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임 직전 검찰 개혁의 매뉴얼로 내세웠던 인권보호수사규칙 제정안을 놓고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법무부는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방지라는 총론에 주목해 달라는 입장이지만, 검찰 내부적으론 수사실무 입장에서 볼 때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반박한다.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는 지난 15일부터 검찰에 의견조회가 이뤄진 인권보호수사규칙 제정안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검사들이 대표적으로 반발하는 부분은 ‘장시간 조사 금지’ 조항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휴식·대기·조서 열람 시간을 포함해 1회 총 조사시간은 12시간을 넘을 수 없게 된다. 식사 및 휴식 시간을 뺀 나머지 조사 시간은 8시간을 넘어선 안 된다. 대구지검 소속 A검사는 최근 이프로스에 “이 규칙의 시행으로 수사절차 진행이 심대하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글을 올렸다.
이 검사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거론하며 “현재 수사 중인 주요 피의자 중 일부는 조사가 끝난 후 조서 열람을 하지 않고 귀가한 뒤 다음 조사기일에 장시간 조서 열람을 하고 다시 신문 조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안다”며 썼다. 그러면서 “앞으로 피의자들이 이 규정을 악용해 조사는 조금 받고 조서 열람만 대여섯 시간을 하는 등 사실상 검찰 피의자 조사를 무력화할까 겁이 난다”고 우려했다.
한 대검 관계자는 인권보호수사규칙 위반을 빌미로 수사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규칙 내용이 모두 검사징계법에 따른 징계가 가능한 직무상 의무로 규정돼 있고, 수사 중에도 감찰이 가능하다”며 “법무부가 아무 때나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짧은 입법예고 기간에 대한 비판도 있다. 행정절차법은 입법예고 기간을 40일 이상으로 규정하지만 법무부는 이 규칙을 지난 15~18일 4일간만 입법예고했다. A검사는 그나마 의견요청이 15일부터 이뤄진 것이고 입법예고는 사실상 18일 단 하루였다고 주장했다. 부산고검 소속 B검사도 “중요 법령에 이렇게 짧은 예고 기간을 준 것은 또 하나의 상식 파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일선 검사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2일 “격무에 시달리는 형사부 평검사들은 장시간 조사 금지 조항으로 인해 업무가 오히려 과중해질 것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검찰 개혁이란 방향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지만, 검사 인원 확충 등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기존에 행정규칙(훈령)이었던 ‘인권보호준칙’을 법무부령으로 격상시켜 ‘되돌릴 수 없는 검찰 개혁’의 토대 중 하나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프로스에 올라온 글들도 반발이라기보다는 민주적 절차에 따른 의견 제시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인권보호라는 큰 틀에서 실제 실무에 인권보호수사규칙을 적용했을 때 예상되는 상황에 대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고 있다”며 “10월 내 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검찰 역시 과거 인권침해적 수사를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남국 변호사는 “정경심 교수 같은 이례적 수사 사례가 60년 검찰 역사상 몇 번이나 있었느냐”며 “강제수사나 구속영장 발부를 언급하면서 피의자를 조사하는 인권침해적 관행을 성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