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세계 평화, 헌법 준수”

입력 2019-10-23 04:03
사진=AFP연합뉴스

나루히토(德仁·사진) 일왕이 22일 열린 자신의 즉위 선포 의식에서 세계 평화를 언급하며 헌법 준수를 다짐했다. 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바꾸려는 아베 신조 총리의 행보와 대비된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오후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왕궁인 고쿄에서 자신의 왕위 계승을 선언했다. ‘즉위례 정전의 의식’이란 이름의 즉위 선포 의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해외 사절단 400여명과 아베 총리를 포함한 일본 인사 1600여명이 참석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지난 5월 1일 즉위했지만 이날 즉위 선포 의식을 별도로 열고 즉위를 국내외에 공식 선언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헌법에 따라 일본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면서 “국민의 예지(叡智·진리를 포착하는 고도의 인식 능력)와 쉼 없는 노력에 의해 우리나라가 한층 발전을 이루고 국제사회의 우호와 평화, 인류 복지와 번영에 기여하길 간절하게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친인 아키히토(明仁) 상왕이 일왕으로 30년 이상 재위한 사실을 언급하며 “항상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바라면서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한다”며 각오를 더했다.

나루히토 일왕이 세계 평화를 언급한 것은 아키히토 상왕이 재위 중에 밝혔던 메시지와 상통한다. 전후 세대 첫 군주인 나루히토 일왕은 부친으로부터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지난 5월 즉위 당시에도 부친의 뜻을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이 안보체제를 정비해 자위대가 각국 분쟁에 개입할 가능성이 커지는 등 전쟁에 가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루히토 일왕의 메시지는 의미가 작지 않다.

헌법을 따르겠다고 언급한 것도 일본의 정치 상황과 맞물려 주목받는다. 전후 최장기 집권 중인 아베 총리는 개헌을 숙원으로 삼고 있다. 일왕은 헌법상 정치적 권한을 지니지 않아 개헌에 찬반 표명을 하기 어렵지만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일왕의 이날 발언은 아베 총리의 폭주와 대비된다.

하지만 이날 즉위 선포 의식은 위헌 및 정교분리 위반 논란도 일으키고 있다. 국민의 대표인 아베 총리가 일왕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천황폐하 만세”를 외친 것은 헌법에 규정된 국민주권에 반한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일본 전통신앙인 ‘신도’ 색채가 짙은 신화 속 물건을 의식에 사용하면서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