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왕 “세계 평화, 헌법 준수”… 아베 정부 새겨들어야

입력 2019-10-23 04:03
나루히토 일왕이 22일 도쿄 자신의 거처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지난 5월 1일 부친 아키히토 전 일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자신의 연호인 레이와(令和)시대를 열었지만 이날 행사는 일본 안팎에 왕위 계승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자리였다. 일왕 즉위식은 29년 만에 열리는 일본의 경사(慶事)로 170여개국 사절을 비롯해 2000여명이 참석했다. 우리나라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정부 대표로 보내 축하했다. 아베 정부의 극우화와 수출 규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태지만 이웃나라의 경사에 최대한 예를 갖춰 축하해 주는 것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런 노력이 쌓일 때 양국의 뿌리 깊은 갈등을 풀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즉위식에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세계 평화’ ‘헌법 준수’를 강조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되고자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아베 정부의 행보와 거리를 두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그는 지난 8월 15일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 추도식에서도 과거사에 대한 ‘깊은 반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일왕은 정치적 실권은 없지만 대다수 일본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국가 통합의 상징적 존재다. 이런 일왕의 발언은 아베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으르렁대는 것은 양국은 물론이고 동북아에도 불행이다. 앙금을 털어내고 미래지향적인 우호 협력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 무라야마 담화 등을 통해 일본 정부가 그런 태도를 취했을 때는 한·일 관계가 좋았지만 아베 정부처럼 과거사를 부정하고 극우 성향을 노골화할 때는 관계가 악화된 게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일본이 세계 3위 경제대국이지만 국제사회에서 그에 걸맞은 위상을 갖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고는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도, 한·일 간 우호 협력 관계를 열어갈 수도 없다는 것을 아베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