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부의 적과 맞닥뜨렸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국무부 관리들이 탄핵 조사에 적극 응하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의원도 “탄핵을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하는 등 공화당에서도 이반 조짐이 보인다. 탄핵 정국을 관리해야 할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마저 잇따른 말실수로 위기를 자초하는 모양새다.
CNN방송은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새로운 증거’를 전제로 탄핵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대표적 친(親)트럼프 인사인 그레이엄 상원의원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위험한 상황을 맞고 있다는 새로운 신호라고 CNN은 분석했다.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날 HBO채널을 통해 방송된 악시오스(Axios on HBO)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자로부터 “새로운 증거들이 나올 경우 탄핵을 찬성하는 데 열려 있는 입장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레이엄 의원은 “물론”이라며 “범죄를 입증할 무언가를 나에게 보여준다면 그렇다는 의미”라고 답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퀴드 프로 쿼’(보상 또는 대가로 주는 것)에 관여했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매우 충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레이엄은 현재까지 알려진 증거로는 탄핵 사유가 안 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국무부의 복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무부 직원들은 그동안 ‘그림자 정부(deep state)’라고 조롱받고 ‘오바마 잔당’이라는 비난도 들었다. 막대한 규모의 예산 감축을 하겠다는 위협도 받아야 했다”며 “이제 미국 외교관들이 복수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의 청문회 소환에 비교적 성실하게 응하고 있는 국무부 직원들의 모습을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홀대에 대한 복수로 해석한 것이다.
실제 국무부 직원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청문회 증언 금지 지시를 대놓고 어기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마이클 매킨리 전 국무부 수석보좌관은 청문회 출석을 위해 최근 사표를 제출했다. 필립 리커 국무부 차관보 대행과 조지 켄트 부차관보, 빌 테일러 우크라이나 주재 대리대사 등 인사들은 현직을 유지한 채 의회 증언을 했다. 국무부 내부에는 청문회에 출석한 직원들을 영웅시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멀베이니 대행의 말실수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여전히 호스피탈리티 산업(호텔·레스토랑 등 접객업)에 종사한다고 생각한다”고 멀베이니 대행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G7(주요 7개국) 정상회담의 트럼프 대통령 소유 리조트 개최 번복과 관련한 설명을 하는 도중이었다. 앞서 멀베이니 대행은 지난 17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서버 관련 의혹을 내게 언급했냐고? 그렇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 때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를 보류한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야기했다. 그의 발언이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 원조를 대가로 민주당을 수사하도록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했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자 그는 당일 오후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었다”며 발언을 번복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조성은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