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없는 위기 직면한 재계, ‘칼바람 인사’ 속도 빨라진다

입력 2019-10-22 04:04

재계의 12월 정기인사 관행이 깨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 수출규제 등 외부 변수로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한 재계의 인적 쇄신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주요 그룹 총수들이 경영 환경 불확실성에 대한 선제적·총체적 대응을 강조하고 있어 올가을과 연말 단행될 임원 인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21일 지난 2분기 창사 이후 첫 분기적자를 기록한 이마트 부문에 대한 인사를 먼저 단행했다.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이갑수(62) 대표이사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강희석(50) 베인앤드컴퍼니 소비재·유통 부문 파트너를 영입했다. 이마트가 외부인사를 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은 26년 만에 처음이다. 매년 12월 1일 정기인사를 했던 관행을 깨고 인사를 앞당긴 것도 이례적이다. 정용진 부회장이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강화하고 변화와 혁신을 촉구하기 위해 인적 쇄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강 신임 이마트 대표는 1993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농림수산식품부에서 근무했던 공무원 출신이다. 2005년부터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경영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일하면서 10여년 동안 이마트 컨설팅 업무를 맡아왔다. 이마트를 포함해 유통업 관련 컨설팅 업무를 오랫동안 해 와 글로벌 유통 트렌드도 잘 아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변하는 유통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젊은 강 대표를 영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세계조선호텔 대표이사는 전략실 관리총괄 한채양 부사장이 맡게 됐다. 신세계아이앤씨 손정현 상무는 부사장보로 승진했다. 이마트 인사가 전격 단행되면서 12월 초로 예정된 신세계그룹 백화점 부문과 전략실 등의 정기인사도 규모와 폭이 커질지 관심이 쏠린다.

앞서 LG디스플레이는 지난달 16일 새 CEO로 정호영 LG화학 사장을 전격 선임했다. 보통 LG그룹은 11월 말 사장단 인사를 하는 데 두 달 이상 빠른 움직임이었다. LG디스플레이 CEO 교체는 연말 LG그룹 전체의 인사 폭이 커질 것이라는 시그널로 해석된다. 지난해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 대표이사로 영입한 것 외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지만, 올해는 구광모 회장 취임 2년차이기 때문에 좀 더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인적 쇄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이날부터 한 달간 계열사 최고경영진을 만나 내년 사업 계획을 점검하는 ‘하반기 사업보고회’에 참석한다.

다만 삼성, 현대차, SK, 롯데 등 주요 그룹은 위기 상황에도 신중하게 인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 때문에 최근 몇 년간 대규모 인사를 하지 않았던 삼성은 올해도 대규모 인사를 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다시 재판을 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SK는 각각 정의선 수석부회장과 최태원 회장 중심의 체제를 구축한 터라 대규모 인사보다는 꼭 필요한 곳에 ‘원포인트’ 인사를 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4명의 비즈니스유닛(BU)장 중 2곳을 교체한 롯데는 올해 유통과 호텔·서비스 중 1~2곳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올해 주요 그룹 인사에서 CEO 교체는 많지 않더라도 임원 및 조직 개편은 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내년 경영 환경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이라면서 “위기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인사와 조직 개편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엽 문수정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