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20주째 민주화를 요구하는 주말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의 집회 불허에도 불구하고 시위대는 거리를 점거한 채 곳곳의 지하철역 시설을 부수고, 친중국 상점과 점포들을 습격했다. 지난주 시민단체 대표가 쇠망치 공격을 당한데 이어 전단을 돌리던 시민이 흉기에 찔리는 등 시위대를 향한 잔혹한 테러도 이어지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시민들은 20일 경찰이 민간인권전선의 집회를 불허했음에도 도심 곳곳에서 행정장관 직선제 등 ‘5대 요구’ 수용을 촉구하고 ‘복면금지법’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후 거리 행진을 벌이며 곳곳의 시설을 파괴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차우(21)씨는 “솔직히 나는 두렵지만 내가 집에 머무른다면 그건 경찰에게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중국계 기업으로 알려진 마트 체인 ‘베스트마트 360’에 들어가 진열대를 넘어뜨리고 스프레이로 벽 곳곳에 ‘홍콩을 해방시키자’ ‘중국 공산당은 하늘이 무너뜨릴 것’이라는 내용의 낙서를 했다. 야우마테이역에서는 시위대가 역사 안으로 화염병을 던졌고, 몽콕역의 한 출입구도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으로 불길에 휩싸였다. 침사추이의 중국은행 점포도 시위대의 화염병 공격을 받았고, 곳곳의 현금인출기는 검은색 스프레이와 둔기로 훼손됐다.
시위대가 지하도 출입구와 도로 등을 철구조물과 벽돌 등으로 막아 교통을 방해하자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를 동원해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오스틴역과 침사추이역 등 일부 지하철역이 폐쇄되면서 침사추이에 머물던 관광객들은 중국 본토행 고속철을 타기 위해 웨스트카오룽역까지 캐리어를 끌고 1시간가량 걸어가야 했다. 한 남성은 “정말 끔찍했다. 택시로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 길은 봉쇄돼 있고, 택시는 우리를 태워주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전날에는 타이포시장역 인근의 ‘레넌 벽’ 앞에서 전단을 돌리던 19세 남성이 다른 남성의 흉기 공격을 받아 목과 복부에 상처를 입었다. 21세로 알려진 범인은 피해자에게 달려들어 한 차례 공격한 뒤 피해자가 도망가자 쫓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범인은 피해자를 공격한 뒤 “홍콩은 중국의 일부분이다. 홍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외쳤다. 앞서 지난주에는 홍콩 시위를 이끈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 대표가 괴한들에게 쇠망치 공격을 당해 다치는 등 시위대를 겨냥한 테러도 잇따르고 있다.
한편 SCMP는 지난 6월 초부터 지금까지 홍콩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15세 이하 청소년이 105명에 달하는 등 청소년의 인권 보장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6일에는 최연소자인 12세 학생 2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경찰이 청소년 보호 명목으로 체포된 청소년을 장기 구금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월 29일 체포된 13세 여학생은 한 달 가까이 소년원에서 지낸 뒤 9월 27일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일부 청소년은 경찰서 내에서 성인과 함께 구금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야당 의원 입킨웬은 “폭동 혐의로 구금되는 성인들도 보석 허가를 받으면 1주일 내 풀려나는데 청소년을 장기 구금하는 것은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