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 홀’ 명암… 왕좌 탈환 토머스, 땅을 친 대니 리

입력 2019-10-21 04:07
저스틴 토머스가 20일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우승 확정 후 갤러리에게 박수를 받으며 시상식장으로 가고 있다. JNA골프 제공

제주도 서귀포 클럽 나인브릿지(파72·7241야드)의 시그니처 홀인 마지막 18번 홀(파5). 챔피언 조의 3명이 모두 투온에 성공하고 마지막 핀을 향해 걸었다. 기준타수까지 3타. 단독 2위인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한국명 이진명·29)는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저스틴 토머스(26·미국)를 2타 차이로 추격하고 있었다. 비록 낮은 가능성이지만, 이글 퍼트 하나면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가거나 역전이 가능했다.

이 홀은 이글이 쏟아진 ‘희망의 홀’이다. 이날 경기를 마친 선수 76명 중 무려 10명이 최종 4라운드 18번 홀에서 이글을 잡았다. 대니 리도 전날 이 홀에서 20m짜리 이글 퍼트를 낚아 공동 선두로 치고 오른 좋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행운은 두 번 찾아오지 않았다. 대니 리의 퍼트는 정확했지만 홀컵을 맞고 튕겨나가 아쉬움을 샀다.

그 순간 대니 리와 토머스의 표정이 엇갈렸다. 토머스는 가슴을 쓸어내린 듯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니 리는 공을 바로 앞 홀컵으로 밀어 넣고 버디로 끝냈다. 토머스의 세 번째 타는 홀컵 1m 앞에 있었다. 토머스는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연습을 반복하며 마지막 타를 준비했고, 가볍게 공을 밀어 친 버디 퍼트로 우승을 확정했다.

저스틴 토머스가 더 CJ컵을 정복한 뒤 18번 홀 앞에서 트로피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의 초대 챔피언 토머스가 2년 만에 왕좌를 탈환했다. 토머스는 20일 클럽 나인브릿지에서 열린 더 CJ컵 최종 4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를 적어냈다. 최종 합계는 20언더파 268타. 준우승한 대니 리의 최종 합계는 2타 차이로 밀린 18언더파 270타였다. 토머스는 우승 상금 175만5000달러(약 20억7000만원)와 자신의 한글명이 금색으로 새겨진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토머스는 2017년 더 CJ컵 원년에 우승한 뒤 3회 연속 이 대회에 출전했다. 토머스는 이번에 달성한 PGA 투어 통산 11승 중 2승을 더 CJ컵에서 수확했다. 그는 이 대회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절친한 조던 스피스(미국)에게 추천해 올해 대회 출전을 이끌어낼 정도다.

토머스는 경기를 마친 뒤 클럽 나인브릿지 미디어 센터 기자회견장에서 대니 리의 이글 퍼트가 홀컵으로 들어갈 뻔했던 마지막 18번 홀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는 “리의 퍼트 감각이 이번 대회 내내 좋았다. 그의 이글 퍼트가 홀컵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들어가지 않아 안도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이 대회 코스에 대해서는 “두 번 우승해 나와 궁합이 맞는 것 같다”며 “아직 (우승컵에 적혀 있는)한글로 이름을 쓸줄 모르지만 1년간 시간이 있으니 연습해서 내년엔 내 이름을 한글로 써 보겠다”고 환히 웃었다.

토머스와 우승 경쟁을 벌인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가 마지막 홀에서 이글 퍼트를 아깝게 놓친 뒤 골프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아쉬워하고 있다. JNA골프 제공

대니 리는 출산 예정일보다 두 달 빨리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있는 둘째에게 바치려 했던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지 못했지만, 갤러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올 시즌 최고 성적으로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편 안병훈은 이날 3타를 줄이며 13언더파로 6위에 오르며 출전 한국선수 중 유일한 톱10에 자리했다. 또 토머스의 추천으로 처음 출전한 스피스는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해 공동 8위로 선전했다. PGA 투어 첫승을 노렸던 지난 시즌 신인왕 임성재는 공동 39위에 올랐다. 2연패를 노렸던 세계 랭킹 1위 브룩스 켑카(미국)는 2라운드에서 미끄러져 재발한 왼쪽 무릎 통증으로 3라운드에 앞서 기권했다.

PGA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더 CJ컵은 올해에도 최다 관중 수를 경신했다. 더 CJ컵 조직위원회는 “나흘간 4만6314명의 갤러리가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날에만 1만9294명이 몰리며 클럽 나인브릿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갤러리 수는 2017년 초대 대회 때 3만5000명에서 지난해 4만1000명에 이어 매년 늘고 있다.

클럽 나인브릿지에 대한 호평도 이어졌다. 여러 코스를 경험하며 투어 통산 44승을 누적한 베테랑 필 미켈슨(미국)은 클럽 나인브릿지를 메이저대회 마스터스의 개최지인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 비유하기도 했다.

서귀포=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