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가 그리 좋지 않은 때에 서울 중구 정동 미국 대사관저에 친북 단체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이 무단 침입했다. 대사관저에 들어간 이들은 “해리스(주한 미국대사)는 이 땅을 떠나라” “방위 분담금 인상 절대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점거 시위를 벌였다. 주한 미국대사가 거주하는 대사관저(일명 하비브 하우스)는 빈 협약에 따라 한국 경찰이 보호 의무를 지는 ‘공관 지역’이다.
무엇보다 경찰의 대응이 이해가 안 된다. 18일 오후 미 대사관저 앞 20m 지점에서 대진연 소속 19명이 시위를 벌였는데도 경찰은 이를 보고만 있었다. 사전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 시위였다. 그다음, 시위대가 준비해 온 사다리를 이용해 월담을 시도하는데도 경찰은 이를 강력히 제지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대사관저에 들어간 이들을 모두 체포하는 데 70분이나 걸렸다. 여성 회원 11명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성추행 시비가 벌어질 우려가 있다며 여경이 도착하길 기다렸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다. 만에 하나 이들이 사제 폭탄 등을 갖고 들어갔고 대사나 가족이 실내에 있었다면 어쩔 뻔했나. 모든 걸 차치하고 외교공관에 침입한 범법자가 여성이라고 제때 연행도 못 하는 공권력을 공권력이라고 할 수 있나. 심각한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사안이다. 미국 대사관은 물론 국무부도 “한국 정부에 주한외교단 보호를 위한 노력을 강화해 달라고 촉구한다”고 했다. 동맹국 정부에 ‘촉구(urge)’한 것은 외교적으로 매우 강도 높은 표현이다. 항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1979년 이란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사태 등을 겪은 미국은 재외 공관 안전에 극도로 민감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미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대북 제재 해제를 놓고 갈등의 골이 깊은 한·미 관계에 새로운 악재가 될 수 있다.
이번 시위 참가자는 물론 배후자도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대진연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하는 백두칭송위원회’ 결성을 주도했고 태영호 전 북한 공사를 지속적으로 겁박해 왔다.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흔들 수 있는 이런 도 넘은 행위를 정부가 방관해 온 것이 이번 사건의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설] 경찰의 ‘미 대사관저 난입’ 대응 이해 안 된다
입력 2019-10-21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