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고졸 신화’를 낳은 서울 성동구 덕수고등학교(옛 덕수상고)에서 17일 조금 특별한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기업인이 된 졸업생들이 모교 후배를 채용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동문 기업 취업박람회가 열린 건 전국 586개 특성화고 중 덕수고가 처음이다.
이날 오후 덕수고 체육관인 덕수관에선 특성화계열(글로벌경영·금융회계·컴퓨터정보과) 3학년 재학생 53명이 미리 준비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들고 면접에 임했다. 아직 교복 차림에 앳된 얼굴이었지만 전공과 관련된 질문에 답할 땐 표정과 태도 모두 진지했다. 한 학생은 면접 직전까지 준비한 답변을 되뇌는 모습이었다. 바삐 부스를 옮겨다니면서 회사 5곳의 면접을 본 학생도 보였다. 담임교사들은 제자들의 용모가 단정한지, 빠뜨린 서류는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장승혁(18)군은 “선배들이 재직하는 회사라고 하니 더 믿음이 간다”며 “원하는 회사에 꼭 취업해 ‘역시 후배 뽑길 잘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조나현(18)양은 “특성화고 취업률이 갈수록 떨어진다고 해 고민이 많았는데 교내에서 취업 행사가 열려 정말 기쁘다”며 “후배들에게도 이런 좋은 기회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제 장점을 많이 봐주는 것 같아 자신감이 생겼다” “선배들이 있어 든든하고 자랑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박람회에는 덕수고 동문 우수기업 26곳이 참여했다. 자동차 판매, 서비스, 무역, 건설, 의료제조, 식품 등 업종도 다양했다. 취업박람회에 앞서 지난 14일엔 업체 인사 담당자인 졸업생들이 재학생을 대상으로 자기소개서 작성 요령, 면접 노하우 등 사전 교육을 진행했다.
취업박람회를 후원한 총동창회는 지난 2월부터 학교 측과 행사 준비를 해왔다. 관가와 금융권 등에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던 옛 덕수상고 시절과 달리 취업률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들을 돕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한때 80%에 이르렀던 특성화고 취업률은 지난해 54.6%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성화고는 특정 분야의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현장실습 등 체험 위주의 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신입생 모집 정원을 못 채우는 학교도 나오고 있다.
김동수 총동창회장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40, 50대 졸업생들이 주축이 돼 취업박람회를 준비했다”며 “특성화계열 후배들이 남아 있는 한 계속해서 동문 기업 박람회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덕수고 특성화계열은 2023년 경기상업고등학교로 흡수·통합될 예정이다.
곧 취업 전선에 뛰어들 1, 2학년 학생 80여명도 이날 별도로 마련된 동문 기업인 초청 특강을 듣고 면접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학생들은 기업별 채용공고를 유심히 살펴보는가 하면 졸업생 선배들을 붙들고 취업 관련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1학년 최웅(16)군은 “저도 2년 뒤에 취업 준비를 할 텐데 실제 면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와봤다”며 “채용 현장을 직접 보니 더 열심히 공부하고 기술을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