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로 70억원의 뇌물을 건네고 계열사 영화관 매점을 가족회사에 임대해 손해를 끼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동빈(사진) 롯데그룹 회장이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를 확정 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7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신 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업무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신 회장과 함께 기소된 신격호 명예회장도 이날 징역 3년에 벌금 30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 받았다. 신 회장은 2016년 3월 박 전 대통령과 독대한 뒤 면세점 사업 연장 등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고, 그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지원한 혐의(뇌물공여)를 받았다. 신 명예회장 등과 공모해 영화관 롯데시네마의 매점 운영권을 가족회사에 임대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비리 혐의(업무상 배임) 등도 있다.
1심은 뇌물공여를 유죄로 판단, 신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별도로 진행된 경영비리 혐의 등의 재판에서는 징역 1년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뇌물공여와 경영비리 혐의를 병합 심리한 2심은 신 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해 뇌물을 준 점을 양형에 참작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요구를 쉽사리 거절할 수 없었다는 측면을 감안한 것이다. 검찰과 신 회장 측은 각각 상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다만 대법원은 “신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이익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며 “강요죄의 피해자가 아니라 뇌물공여자”라고 명시했다.
검찰은 그동안 건강상 이유로 불구속 재판을 받았던 신 명예회장에 대해서는 징역형이 확정된 만큼 형을 조만간 집행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 명예회장이 97세로 고령이고 중증 치매인 점을 감안하면 형 집행이 정지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신 명예회장처럼 중증 치매가 있을 경우 심신장애가 회복될 때까지 형 집행을 정지할 수 있고, 이는 수감될 경우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재판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신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입장이다. 롯데 측은 “그동안 큰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지적해주신 염려와 걱정을 겸허히 새기고 신뢰받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구자창 문수정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