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사] “국가서 고위험군 가정 적극 개입해야”… “살아남은 아이 재학대 차단해야”

입력 2019-10-18 04:03
국민일보가 7회에 걸쳐 보도한 ‘살해 후 자살’ 시리즈는 공식 통계조차 집계되지 않은 비극의 실체에 다가서기 위한 시도였다. 현실 문제를 자신의 죽음으로 해결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자녀까지 살해한 부모들은 명백한 범죄 가해자다. 그러나 현장에서 마주한 또 다른 가해자도 있었다. 이들을 제도 안에서 지켜내지 못한 사회 그리고 구조신호에 무신경했던 국가 역시 아이들 죽음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일보는 17일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자살예방·아동보호·심리부검 기관장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이들은 국가가 위기 가정의 아이들을 구출해야 할 의무가 있고, 이를 위한 개입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 정익중 한국아동복지학회장


정익중(사진) 한국아동복지학회장(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살 고위험군 가정에 대한 적극 개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왜 반복되나.

“한국 사회에 안전망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왜 부모가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누군가와 상의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누군가 부모에게 안부만 물었어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사전 예방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서 끝나지 말고 심리적 부검 등 다양한 방식의 조사를 통해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지금은 대부분 자살 사건으로 수사가 종료되면 거기서 분석이 끝나고 만다. 이미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가정에서 참극이 벌어졌다면 국가의 직무유기다.”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나.

“아이는 부모와 국가가 함께 길러야 한다. 부모가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면 국가가 개입하는 게 맞다. 위험군 가정에 대해서는 주기적인 전화나 방문 확인이 필요하다. 방문을 거부하더라도 설득해야 한다. 국가가 개입해서 아이의 얼굴도 한번 보고, 집안 상태도 보고, 부모랑 얘기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 특히 실제 살해 후 자살을 시도했다가 미수에 그친 경우에는 아이를 부모로부터 강제적으로 분리할 필요도 있다.”

-고위험군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정부는 이미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고위험군의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영유아들의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예방주사가 대표적이다. 부모가 정해진 일정을 걸렀다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고위험군 가정일 확률이 크다. 현재 한 해 출생아 수가 30만명 정도로 떨어졌다. 이 정도면 모든 가정을 방문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출산 직후 1년 동안에는 방문이 이뤄줘야 한다.”

-위기 가정에 당장 필요한 조치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부모 스스로 해결하려는 게 문제다. 대개의 위기 가정 부모들은 적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을 모른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보건복지상담센터(국번 없이 129)로 전화해서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다. 더 이상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실제로 상담을 받아보면 다른 방법들이 분명히 있다. 부모들이 도움을 요청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가 먼저 나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더 중요하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 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장


장화정(사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장은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라고 지적했다. 살해 후 자살 위협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경우 안전하게 자라고 있는지 기관이 추적 관찰하는 사후관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살해 미수 피해 아동 보호 과정은.

“살해 후 자살을 포함한 아동학대의 모든 판단은 법원에서 한다. 학대범죄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우리 기관이 아동 보호 조치 집행을 맡는다. 우선 아이를 가해 부모와 분리시키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일에 최우선을 둔다. 이후 상담과 치료 과정을 거치는데, 부모가 살아남았고 아이들이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원가정 복귀를 할지 아이에게 물어본다. 만약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설에 남는 경우 18세까지 지낼 수 있다. 전문가정위탁제도도 이용할 수 있다.”

-아이는 어떤 후유증을 호소하나.

“부모가 학대행위자임에도 불구하고 분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경우가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으니 부모에게 더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반면 ‘왜 나까지 죽이려고 했냐’고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별로 심리상태에 맞는 치료 과정이 필요하다.”

-원가정 복귀는 괜찮나.

“살해 후 자살 미수 사건이 발생하면 아이와 행위자(가해자), 행위자와 같이 사는 구성원까지 통째로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아이만 치료받아서는 가정의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됐다고 판단됐더라도 ‘재학대’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도 걱정이다. 지금은 법원이 정한 의무 추적 기간(최장 4년)이 끝난 뒤에는 추적관리의 강제성이 없다. 가정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재학대 가능성은 없는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강제력이 주어져야 한다.”

-해외는 어떤가.

“부모와의 분리와 원가정 복귀는 어려운 숙제 중 하나다. 분리 원칙을 적용했던 해외의 경우 아이가 매번 위탁시설을 돌면서 적응하지 못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래서 철저한 관리가 이뤄진다는 조건 아래 원가정 복귀를 원칙으로 본다.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자살 미수 사건이나 직접적 학대 정황이 없는 경우에는 강제 개입이 어렵다. 미국도 신고가 있어야만 개입하는 것은 한국과 같지만, 학대의 범주를 넓게 인식해 아이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여기면 바로 신고를 한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