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차주는 보험회사에 연락하지만 현장에 도착하는 레커차는 정비업체 소속이다. 이 정비업체가 사고차량을 견인해 과도하게 수리했는지, 수리비는 적정했는지 소비자는 전혀 알지 못한다. 보험사는 뒤늦게 손해사정을 하지만 대부분 정비업체 견적대로 수리비(보험금)를 지급한다.
이 같은 ‘깜깜이’ 자동차 보험수리가 ‘정비 전 손해사정’ 방식으로 바뀐다. 보험사가 정비업체의 수리견적서에 대한 손해사정 내용을 차주와 업체에 먼저 제공한 뒤 수리·정비가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더불어민주당, 4개 손해보험사, 전국 시·도 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 소비자연대는 17일 국회에서 ‘자동차 보험정비 분야의 건전한 발전과 소비자권익 증진을 위한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우선 서울지역을 대상으로 200만원 이하 수리건에 대해 1년간 ‘정비개시 전 손해사정’을 시범 운영한 뒤 전국 확대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시범운영 시기와 세부방식은 보험업계와 정비업계, 소비자단체가 참여하는 상생협의회를 구성해 결정한다. 상생협의회는 이밖에 손해사정과 정비요금과 관련한 양측 업계의 입장을 협의·조정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한다.
분쟁이 잦은 정비요금은 정비조합과 보험사가 주기적으로 검토한 후 지급하는 프로세스도 구축한다. 정비조합에서 정비요금 청구내역을 제출하면 손해보험사에서 검토한 후 합리적인 지급사유가 있는 경우 신속하게 지급하는 내용이다. 기존 ‘선 수리 후 손해사정’ 방식은 정비업체와 보험사 간 다툼 소지가 다분했다. 정비업체가 보험사에 청구한 정비요금이 감액, 미지급, 지급지연이 돼도 어느 부분이 삭감 또는 미지급됐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차주에게도 손해사정 내역이 제공되지 않아 자기부담금과 보험료 할증 규모를 알지 못한 채 수리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와 중기부는 국내 자동차보험 가입자 수가 2100만명에 육박하고 자동차 보험수리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보험사와 정비업체 간 수리비 분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합동실태조사를 실시하고 관련 업계와 상생협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불합리한 거래 관행과 분쟁 해결에 뜻을 함께한 총 8개 기관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번 협약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호 협력해 동반성장하는 선례가 될 뿐 아니라 소비자 권익 증대에도 도움이 된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