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저물가 덫에… 기준금리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리다

입력 2019-10-17 04:03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기준금리 인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수준으로 내린 이면에는 ‘저성장·저물가의 덫’이 있다.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의 대외 불확실성은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국내 기업의 실적 부진이 길게 이어지고, 소비자물가는 역성장(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인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로 2.2%를 제시했지만, 이마저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

이에 2명의 금통위원이 인하를 반대했지만, 금통위는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경기 부양의 필요성이 높은 시점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6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를 열고 “우리 경제는 미·중 무역분쟁 지속, 지정학적 리스크 증대 등으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며 “지난 7월의 성장 전망(올해 성장률 2.2%) 경로를 하회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한은은 한국 경제의 부진 원인으로 대외 불확실성을 첫손에 꼽았다.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교역망이 위축되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계속 타격을 입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는 “한 국가의 정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불확실성이 퍼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또한 저물가가 ‘금리 인하 방아쇠’를 당겼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 시민이 예상하는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1.8%로 1%대에 진입했다. 지난 8월(2.0%)보다 0.2% 포인트 내려갔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낮다는 건 불황 지속을 예상하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총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분간 0% 안팎에서 오르내린다고 내다봤다. 이는 지난 7월 소비자물가가 1%를 밑돌 것이란 예측보다 더 후퇴한 것이다.


여기에다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의 경쟁적 ‘금리 내리기’ 흐름을 감안했다. 각국은 기준금리를 내려 수출기업 가격경쟁력 확보, 시중 유동성 공급, 경기 부양 등에 앞다퉈 뛰어드는 중이다. 한국으로서도 기준금리 인하를 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유지하고 있는 금리 인하 기조는 한·미 금리 격차로 자금 유출을 우려하는 한국으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한은은 상당기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지난 7월과 이번 기준금리 인하 효과뿐만 아니라 대내외 여건 등을 종합 판단해 앞으로 완화 정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제로(0) 금리’로 향할수록 점점 정책 여력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분류되는 이일형·김지원 금통위 위원은 이날 ‘기준금리 동결’ 소수의견을 내며 저금리 기조에 반대했다.

한편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가 급증할 가능성은 현재까지 ‘제한적’이다. 지난 7월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증가세는 지난 8월(7.4%)보다 지난달(4.8%)에 더 줄었다. 최근 3개월간 수도권 주택가격도 보합세를 유지했다. 통상 기준금리를 내리면 대출이 쉬워져 부동산 투기로 이어진다. 하지만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정책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눌렀다. 이 총재가 앞으로도 대출을 규제하는 정부의 거시정책 방향은 일관성있게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이유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