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위기에 쓸 정부 지원금, 도로 건설에 써버린 울산시

입력 2019-10-17 04:07

울산시가 조선업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구의 경제회복을 위해 중앙정부로부터 1000억에 가까운 지원금을 받아놓고 이를 대부분 조선업과는 관계없는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써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업 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지역주민과 소상공인들에게 돌아가야할 몫을 외면한 채 외곽 고속도로 확장에 700억원 이상을 투입한 것이다.

16일 울산시와 동구에 따르면 울산시는 동구가 정부로부터 ‘고용 산업위기 지역’으로 지정된 이후, ‘목적예비비’ 명목으로 2018년 587억9000만원, 올해 386억3800만원 등 총 974억2800만원을 받았다.

정부는 울산뿐이 아니라 경남 4곳(거제, 통영, 고성, 창원 진해구), 전남 3곳(목포, 영암, 해남), 전북 1곳(군산) 등 총 9곳의 고용·산업위기지역에도 목적예비비를 지원했다. 이 돈의 용도는 조선업 위기로 고용이 감소하고, 소상공인 기반이 붕괴된 지역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산의 지원목적과는 달리 고용위기지역인 울산 동구가 직접 사업을 기획해 지원받은 예산은 102억5800만원에 불과했다. 동구는 조선업위기 지원금으로 AR·VR 콘텐츠체험존 조성사업(20억원), 희망근로사업(23억1200만원), 방어진 국가어항 이용고도화 사업(11억6000만원), 해양연안 체험공원 조성(10억원) 등 총 15개 사업에 돈을 사용했다.

울산시는 조선업 관련사업으로 조선해양기업지원센터 구축(30억원), 위기지역 R&D(35억원) 등에 113억원을 사용한 뒤, 나머지 758억7000만원을 도로 신설에 모두 써버렸다. 함양-울산 고속도로(550억원), 장안-온산 국도(185억원), 국도 7호선 단절구간 연결공사(23억원) 등이다.

동구가 지원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은 중앙정부의 지원 구조 때문으로 분석된다. 광역시가 아닌 일반 시·군은 사업을 직접 기획해 목적예비비를 지원받을 수 있지만, 광역시에 속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반드시 시를 통해서만 신청해야 하고 지원금도 시가 받아 전달토록 돼 있다.

동구의회 유봉선 의원은 “결과적으로 고용·산업위기지역인 동구를 위한 목적예비비 대부분은 울산시 사업을 위한 예산으로 변질됐다”면서 “동구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받은 예산을 광역시가 마음대로 쓰는 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울산시 관계자는 “이 지원금을 신청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 명목도 같이 첨부해 포괄적으로 받은 돈인 만큼 용도에 맞게 집행했다”고 해명했다.

울산=조원일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