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상황 상상만… 국제적 놀림감된 ‘유령 경기’

입력 2019-10-17 04:07
황희찬(왼쪽)이 15일 관중석이 텅 빈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3차전 북한과의 경기에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월드컵 예선 초유의 무관중·무중계 경기의 여진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외신들은 남북간의 월드컵 예선 경기를 지극히 폐쇄적으로 치른 북한을 비판했다. 또 대표단이 평양으로 갖고 간 식재료도 압류당하고 호텔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등 북한에서 사실상 고립된 상태로 지낸 것으로 드러났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16일(한국시간) FIFA 홈페이지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역사적인 경기인 만큼 가득 찬 경기장을 기대했지만 팬들이 전혀 없어서 실망했다”고 밝혔다.

인판티노 회장은 1990년 남북통일축구 이후 29년 만에 평양에서 펼쳐진 남북전을 현장에서 관전하기 위해 지난 15일 직접 전세기를 타고 방북했다. 하지만 관중은 없었다. 선수들은 텅 빈 5만석 규모의 관중석 앞에서 경기를 치렀고, 북한이 취재·중계진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아 팬들은 경기 상황을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인판티노 회장은 “경기 생중계와 비자 발급 문제, 외국 기자들의 접근 문제 등을 알고 놀랐다. 우리에겐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며 “북한 축구협회측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비판했다.

외신들도 ‘깜깜이 경기’를 초래한 북한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경기 뒤 ‘가장 비밀스러운 월드컵 예선 경기’라는 제목으로 “중계방송도, 팬도, 외신도, 골도 없었다”고 비꼬았다. 스페인 엘 데스마르케도 ‘이강인이 뛰지 않은 유령경기’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이 언론도, 중계장비도 허용하지 않아 생중계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평양의 빈 관중석 앞에서 열린 ‘기괴한(bizarre)’ 경기가 무승부로 끝났다”며 “한국 팬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극히 간단한 정보밖에 알 수 없었다”고 전했다.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가 경기 후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개한 영상 속 남북 선수들끼리 전반 한때 충돌하는 장면.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 트위터 캡처

이날 현장에 있었던 요아킴 베리스트룀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는 경기 후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경기 사진과 영상을 공유했다. 남북 선수들끼리 충돌한 영상을 게재한 그는 “아이들 앞에서 싸우면 안 된다. 오!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고 무관중 상황을 에둘러 소개했다.

한편 대표팀과 동행한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선수단이 현지 식자재 조달의 어려움에 대비해 고기·해산물 등을 평양에 챙겨갔지만 별도의 신고를 하지 못해 북측에 압류됐다. 또 이날 오후 평양을 떠나 공항가기 전까지 호텔 밖으로 전혀 나가지 못했다. 대표팀은 베이징을 경유해 17일 오전 12시45분 인천공항으로 귀국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