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편 불리하면 “이참에 다 까보자!”… 단 한번도 못 이룬 국회의원 전수조사

입력 2019-10-19 04:01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인해 다른 고위 공직자나 유력 정치인들도 자녀가 입시에서 특혜를 입지 않았을까 하는 국민적 의혹이 커졌다. 이에 정치권은 ‘국회의원 자녀 입시 전수조사’ 카드를 꺼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다음 주 내로 국회의원 자녀 입시 전수조사 관련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전수조사 범위에 고위 공직자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16일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은 최근 10년간 전현직 국회의원과 차관급 및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법관과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 특별시장·광역시장 및 도지사, 군 장성을 대상으로 한 ‘고위 공직자 자녀 입시비리 조사를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바른미래당은 이를 토대로 민주당, 한국당과 전수조사 추진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는 정책연구 사업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다. 이 실패의 역사는 ‘공직자의 비리→국민적 비난→전수조사 카드→여야 합의 실패’라는 패턴으로 반복됐다. 의원 전수조사 추진이 정치권의 여론 잠재우기 카드, 보여주기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정부 들어 의원 전수조사 시도는 이번 자녀 입시 전수조사 추진 전까지 세 차례 있었다. 지난해 4월 민주당 출신인 김기식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돈으로 외유성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 등으로 낙마하자 정의당 고 노회찬 원내대표와 심상정 의원이 ‘국회의원의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당은 “의원 전체가 금감원장인 것도 아니고, 김 원장 때문에 의원을 사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반대했다. 논란 끝에 국민권익위원회가 전수조사를 거쳐 부당한 해외출장 지원을 받은 의원 38명을 적발했다. 그러나 권익위는 38명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고, 이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은 아니다”고 발표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손혜원 의원, 이미선 헌법재판관. 문재인정부 들어 국회의원 전수조사 시도의 발단이 된 인물들이다. 조 전 장관은 자녀 입시, 김 전 원장은 피감기관 지원 해외출장, 손 의원은 이해충돌, 이 재판관은 보유주식에 관한 의원 전수조사를 추진케 했으나 아직 실행된 것은 없다. 연합뉴스

올해 1월 손혜원 민주당 의원(현 무소속)의 전남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정가를 강타했을 때 같은 당 표창원 의원이 ‘국회의원 이해충돌 전수조사 독립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이에 앞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손 의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면 전수조사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민주당이 국정조사를 수용하는 대신 특별위원회를 통한 ‘의원 이해충돌 실태 전수조사’ 실시를 역제안하자 한국당이 거부하며 전수조사가 결국 무산됐다.

지난 4월에는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주식 투자 의혹이 불거지자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의원 보유주식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한국당이 이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자 여당이 전수조사 카드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안 의원은 “만약 한국당 의원 중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정치적 비난을 받는다면 온당한 일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이참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어 주식과 부동산 투기를 한 의원들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공수처 설치 이전이라도 국회에서 자체 조사할 것을 촉구한다. 나부터 조사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의원 보유주식 전수조사도 흐지부지됐다.

기나긴 실패의 역사는 2008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의 쌀 직불금 불법 수령 파문이 커지자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이 의원과 국회 직원의 쌀 직불금 수령 여부에 대해 직접 전수조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2012년에는 문대성 당시 새누리당 의원을 포함한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7명의 논문이 학술단체협의회로부터 ‘심각한 표절’이라는 판정을 받으면서 의원 논문을 전수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2016년에는 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딸을 본인 의원실 인턴으로 채용한 일로 논란이 되자 당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전체 의원실 2700여명 보좌진에 대한 정기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또 같은 시기 보수 시민단체들이 의원 3대 비리(채용·병역 비리, 논문 표절) 전수조사를 요청했지만 새누리당이 거부했다. 지금까지 국회는 단 한 번도 스스로 전수조사를 실행하지 않은 셈이다. 권익위 등 외부 기관에 의해 이뤄진 적은 있지만 징계로까지 이어진 경우는 없다.


역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정치권의 의원 전수조사 추진은 매번 아전인수 격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 방어용으로 전수조사 카드를 꺼낸 것이다. ‘우리만 잘못했냐. 이참에 다 까보자’는 식의 행태였다.

여야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의원 전수조사는 이뤄지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의원이 잘못을 저지르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된다. 그러나 지난 3년간 회부된 총 38건에 대해 윤리특위가 의원에게 징계를 내린 경우는 1건도 없다. 윤리특위는 지난 6월 말 활동이 종료됐고 향후 다시 구성될지도 미지수다. 결국 정치권이 스스로 반성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수조사는 법률적으로 처리를 해서 국회 특위를 구성하고 조사 결과를 특위가 보고받아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고발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며 “의원들이 협상하고 조정하는 식으로 하면 안 되고 특별법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