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삼성 공장에 이어 현대자동차 연구소를 방문하는 등 연일 경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경제활력 제고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지난 두 달간 조국 사태가 국내 현안을 잠식하고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경제가 유일한 국면 전환의 돌파구라는 인식이 크다.
문 대통령은 15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를 찾아 “2030년 미래차 부문 세계 1등이 되겠다”는 국가비전을 밝혔다. 미래차는 바이오헬스, 시스템반도체와 함께 정부의 3대 중점 혁신산업 분야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현대차는 1997년부터 친환경차 연구·개발에 돌입해 세계 최초로 수소차 양산에 성공했다”며 “현대차의 친환경차 누적 판매량 100만대 돌파는 이곳 연구원들의 공이 크다. 대통령으로서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공개석상에서 정 부회장을 만난 것은 이번이 11번째다. 정 부회장은 “대통령이 참석하신 가운데 정부가 발표한 ‘미래차 발전 전략’이 저희 기업들에 큰 힘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현대차그룹도 최선을 다해 미래차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에는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열린 신규 투자 협약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참석해 삼성의 13조원 투자를 격려했다. 닷새 만에 주요 대기업 총수 2명을 잇따라 만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상 한 달에 다섯 번 경제 일정이 있었지만 이렇게 대기업 방문 일정이 몰린 것은 이례적”이라며 “대통령이 재계를 향해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미래차 비전 선포식 행사장에서 르노삼성의 초소형 전기차 ‘트위지’에 직접 탑승했다. 스페인에서 제조하던 트위지는 최근 국내 전기차 부품업체 동신모텍의 부산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게 부산의 중소기업에서 생산된다”며 “중소기업에 생산을 전면 위탁한 것에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서철모 화성시장이 “대통령이 타셔서 완판되겠다”고 하자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문 대통령이 대기업과의 접촉면을 늘려가며 혁신성장에 힘을 쏟는 것은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가 빨라지는 등 악화되는 경제지표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세계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수 경기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에는 주요 경제단체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가졌고, 8일 국무회의에서는 “역동적인 경제로 가려면 민간에 활력이 생겨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기업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애로를 해소하는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1일에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고 재정의 신속한 집행을 당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 전 장관 국면이 마무리된 만큼 더 이상의 정쟁 없이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며 “경제를 통해 이제 다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향후 추가적인 경제현장 방문 일정을 고민하고 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