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은행 금융거래 ‘앱’ 하나면 끝… 오픈뱅킹 시대 개봉박두

입력 2019-10-19 04:03 수정 2019-10-21 17:30

스페인 은행 산탄데르(Santander)는 고객의 저축·투자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금융 정보 애플리케이션(앱) ‘머니박스(Moneybox)’와 손잡고 고객이 금융거래를 한 뒤 발생하는 소액(1파운드 미만)의 거스름돈을 예금 계좌나 투자 상품으로 자동이체해준다.

HSBC은행은 지난해 오픈뱅킹 앱인 ‘커넥티드 머니(Connected Money)’를 내놓았다. 고객은 이 앱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다른 은행 계좌와 대출 및 카드 사용 내역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HSBC은행은 고객의 지출 내역을 30개 항목으로 세분해 분석해주는 서비스도 선보였다. 정보 제공에 이어 고객 자산 관리로 지평을 넓힌 것이다. 산탄데르와 HSBC은행이 제공하는 금융서비스는 모두 ‘오픈뱅킹’을 바탕으로 한다.

오픈뱅킹 한국 상륙

오픈뱅킹을 활용한 서비스가 한국에서도 조만간 등장한다. 오픈뱅킹은 은행들의 송금·결제망을 표준화시키고 개방하는 제도다. 이렇게 되면 앱 하나만으로 모든 은행 계좌 조회·결제·송금 등이 가능해진다. 언제, 어디서든 앱 하나로 거의 모든 금융서비스가 가능해진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30일부터 10개 은행이 오픈뱅킹 시범 서비스를 선보인다고 18일 밝혔다.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같은 대형 은행은 물론 BNK부산·DGB대구은행 등 지방은행도 뛰어든다. 12월부터는 핀테크 기업까지 가세해 본격적인 오픈뱅킹 서비스 시대가 열린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오픈뱅킹 서비스를 사전 신청한 업체는 지난 15일 현재 146곳에 이른다. 대표적 종합금융 플랫폼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를 비롯해 ‘뱅크샐러드’를 운영하는 레이니스트, 네이버페이, 롯데멤버스 등이 일찌감치 신청을 끝냈다. 은행의 경우 일반은행(16곳)과 인터넷전문은행으로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앱 하나로 모든 금융서비스를

오픈뱅킹의 대표적 특징은 앱 하나로 간편하게 타행 계좌를 조회하거나 송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은행 앱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은행들이 제공하는 오픈뱅킹 공동 서비스로는 잔액, 거래 내역, 계좌 실명, 송금인 정보 조회와 입출금, 이체 등이 있다.

일단 이달 말로 예정된 시범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은행 앱에 ‘오픈뱅킹’ 관련 메뉴를 쓰면 된다. 메뉴에 자신이 갖고 있는 타행 계좌번호를 등록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금융결제원이 운영 중인 계좌 정보 통합관리 서비스 ‘어카운트인포’와 연계된다.

연말에 핀테크 업체까지 가세하면 서비스의 양과 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통합 자산 조회, 간편결제는 물론 각종 금융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금융서비스도 선보일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오픈뱅킹은 계좌 조회·이체 수준을 넘어 다양한 금융데이터 분석을 통한 고객 서비스, ‘마이데이터’산업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라며 “금융 혁신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데이터산업은 의료·금융·유통·에너지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분야를 대상으로 한 본인 정보 활용 지원 서비스다.

싸고 편리한 금융서비스

오픈뱅킹이 가져올 금융의 변화는 획기적이다. 소비자는 은행들이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를 비교 선택할 수 있다. 서비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저렴하고 편리한 서비스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아진다. 취약계층이나 사회 초년생, 주부 등 이른바 ‘신파일러’(Thin-filer·금융 이력 부족자)를 고객으로 겨냥한 금융서비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핀테크 사업자가 은행 망에 지불했던 이용료가 10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진다. 지금은 핀테크 업체들이 송금·결제 건당 400~500원에 달하는 펌뱅킹 이용료를 금융회사에 지불하고 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과제도 있다.

개인정보가 여러 업체에 공유되면서 정보 유출, 해킹·보안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업체들이 ‘천편일률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지난해 초 오픈뱅킹이 도입됐지만 고객 인지도가 25%대에 머물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오픈뱅킹 시행 이후 고객이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하는지 등을 세심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픈뱅킹은 금융회사에 기회이자 위기다. 은행, 인터넷은행, 핀테크 업체가 무한경쟁에 돌입하면서 과거 ‘주거래 은행’ 개념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고객 이탈, 은행 수익성 악화라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김시홍 금융결제원 신사업개발실장은 “은행들의 조회 및 이체, 펌뱅킹(기업·은행 간 금융 전산망) 수수료체계의 전반적 인하가 불가피하다”며 “은행도 개방형 플랫폼 사업자로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바일 ‘원클릭’으로 은행·증권·카드·보험을 넘나드는 복합 금융서비스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계열사 연계 또는 유관 업계와의 제휴 강화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법·제도 정비 동반돼야

전문가들은 오픈뱅킹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구현되려면 법·제도 정비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마련 중인 오픈뱅킹 시스템은 금융회사와 핀테크 업체 간 실무협약에 근거한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빠르게 변해가는 글로벌 데이터 경제 흐름 속에서 금융서비스를 구현하려면 관련 법·제도가 제때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개인 정보보호 또한 지속적인 법·제도 정비를 통해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오픈뱅킹 제도 도입을 위한 유관법으로는 신용정보법(빅데이터 활용 촉진, 개인신용정보전송권, 마이데이터산업 도입)과 전자금융거래법(지급지시서비스업 등 다양한 업종의 허용) 등이 있다. 신용정보법은 국회 상임위(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고, 전자금융거래법은 금융위가 정부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