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신용 낮은 이들에 비금융 정보 참고한 대출 ‘인기’

입력 2019-10-16 04:03

우리은행은 지난 7월 11일 ‘우리 비상금 대출’이라는 독특한 상품을 내놓았다. 통신사가 보유한 비금융 정보(통신비 납부 이력, 휴대전화 기기 정보, 소액결제 내역)를 참고해 고객의 신용을 평가하는 게 특징이다. 기존 대출상품과 달리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한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보니 20, 30대 관심이 뜨겁다. 상대적으로 소액을 빌려주는데도 지난 14일 기준으로 대출 잔액 150억원을 넘어섰다.

금융권이 비금융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신용평가’에 주목하고 있다. 대안신용평가를 기반으로 새로운 대출 상품을 출시하거나 개발 중이다. 대안신용평가는 기존 금융거래 정보에 비금융 정보도 함께 고려해 신용평가를 하는 것을 말한다. 통신·전기·가스요급 납부 이력, 온라인 쇼핑몰 거래 내역, SNS 정보 등이 비금융 정보다.

새로운 신용평가 방식의 등장은 ‘신파일러’(Thin filer·금융 이력 부족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고금리 대출이나 사금융으로 내몰렸던 이들이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다만 평가 모델이 장기간에 걸쳐 고도화되지 않는다면 금융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

최경진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심사위원회 심사위원은 15일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대안신용평가를 통해 소액 금융서비스가 필요한 중소상공인 및 서민의 금융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 신용평가 시스템은 현금 보유량이나 자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다보니 금융 이력이 부족한 이들은 돈을 빌릴 곳이 없는 왜곡이 발생한다. 금융 이력이 없으면 저신용자로 몰리고 대출까지 막혀 사금융으로 쫓겨난다. 사금융 이용으로 다시 신용이 깎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11월 21일 ‘데이터 결제 활성화를 위한 신용정보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 올해부터 금융권에 대안신용평가 도입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7일 통신사와 업무제휴를 맺고 신용평가에 통신사의 거래정보(모바일 소액 결제, 요금 납부 등)를 참고하는 대출 상품을 개발 중이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11일 보험·세금 납부 내역 등을 활용해 신용 점수를 올려주는 ‘신용점수 올리기 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러나 대안신용평가는 한국에서만 ‘혁신’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이미 비금융 정보를 거래하는 시장도 생겼다. 미국 경제분석전문그룹 마켓워치는 “미국 내 비금융 정보의 총 거래액은 올해 11억 달러로 추산된다. 내년 17억 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부작용도 뒤따른다. 블룸버그는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소규모 금융회사들이 비금융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해 공격경영을 하다가 부실채권이 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대출 목적이 분명한 개인에 한해서만 대안신용평가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신비·공과금 납부 같은 비금융 정보에는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필수재가 많이 포함돼 있어 신용이 과장될 우려가 있다”며 “대출 목적이 투자가 아닌 실제 생활비 경우에만 비금융 정보를 참고해 한도를 조절한 후 대출을 실행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