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은 사퇴를 발표하기 전날인 13일 고위 당정청 회의 이후에 사퇴 의사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조 장관의 전격 사퇴는 극소수의 여권 핵심 인사들만 알고 있던 갑작스러운 뉴스였다. 조 장관 사퇴 여파로 청와대는 14일 예정됐던 대통령 주재 수석 보좌관회의를 1시간 뒤로 연기하기도 했다. ‘조국 사태’ 장기화로 국정이 블랙홀에 빠지자 조 장관이 자진 사퇴를 결심하고, 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게 여권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조 장관이 그동안 “거취는 인사권자 권한”이라고 수차례 밝힌 것을 감안하면, 그의 사퇴가 문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결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조 장관이 전날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 뒤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며 “정부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컸던 거 같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청와대와) 미리 상의를 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조 장관이 판단해서 결단했다는 말 속에 들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사퇴 발표 3시간40분 뒤인 이날 오후 5시40분쯤 바로 사표를 수리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조 장관 사퇴가 본인의 결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조 장관 사퇴 발표 후 당과 사전교감이 있었는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전혀 아니다”며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사퇴 소식을 들었다”고 말했다. 홍익표 수석대변인도 “아침까지도, 조 장관 본인이 밝힐 때까지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15일에는 검찰 개혁안을 처리하기 위한 국무회의와 법무부 국정감사도 예정돼 있었다. 사퇴 시점이 그만큼 예측보다 빨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이밍이 조금 빨랐을 뿐, 사퇴는 이미 기정사실화돼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퇴 결정은 13일 당정청 회의를 계기로 나온 것 같은데, 문 대통령은 (그 전에) 이미 결정한 것 같다”고 했다. 강 정무수석도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촛불을 보며 계속 무거운 책임감을 (조 장관이) 느꼈다”며 “그동안 계속 그런(사퇴) 고민이 있었다”고 전했다. 조 장관은 2주 전부터 ‘검찰 개혁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청와대와 여당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장관의 사퇴 결정이 여권 핵심 인사들 사이에 공유됐고, 다만 최종 시점을 고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여권에서는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가 조 장관의 ‘명예 퇴진’ 시점으로 공공연하게 거론돼 왔다. 이달 말 검찰 개혁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 조 장관이 소임을 다하게 되는 것이고, 이후 사퇴하는 방안이었다.
조 장관이 아직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격 사퇴한 것은 악화일로의 여론 탓이라는 해석이 많다. 여권은 민생 경제 행보로 조국 블랙홀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민심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조 장관 거취 문제를 장기간 끌기 어렵다는 판단이 많았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최근 권노갑, 정대철 전 의원 등 여권 원로들을 만난 자리에서 조 장관 거취에 대한 의견을 전달받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도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에 비춰 이날 낮 12시에 문 대통령과 이 총리가 주례 회동을 할 때 조 장관 사퇴 문제가 공유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