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 내륙국 볼리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것을 많이 가진 나라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도 라파스(해발 3640m)와 티티카카 호수(해발 3810m), 세계 최대의 우유니 소금사막이 대표적이다. 리튬과 천연가스 등을 가진 자원 부국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GDP)이 549달러(약 65만원)에 불과한 중남미 최빈국이다.
가난한 이 땅에서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성경말씀을 통해 비전을 심어주는 부부가 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기아대책의 ‘기대봉사단’ 김신성(58) 김옥란(53) 선교사 부부다. 지난달 16~20일 경기도 안성중앙성결교회 송용현(56) 목사와 기아대책 관계자들은 김 선교사 부부가 사역하고 있는 로스따히보스 지역의 아동개발프로그램 CDP(Child Development Program)센터를 방문했다. CDP는 빈곤 아동과 일대일 결연을 하고 교육·급식·보건·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기아대책의 후원제도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해.”
센터 입구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찬양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배와 함께 생일파티도 열렸다. 김 선교사 가족이 직접 만든 대형 케이크 등장에 아이들은 “와~”라며 탄성을 질렀다.
송 목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생일파티가 끝나고 CDP 후원 아동들은 수건과 과자를 선물 받았다. 결연을 기다리는 아동의 손에는 과자만 쥐어졌다. 이마저도 김 선교사 부부가 아이들을 배려해 준비한 것이었다. 송 목사가 안타까움을 드러내자 김 선교사는 “사역하면서 가장 마음 아픈 순간”이라고 말했다.
김 선교사 부부는 로스따히보스와 몰리엔디따 지역에 CDP 센터를 각각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매주 수·목요일 초·중·고학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학습을 돕고 있다. 250여명의 아동이 CDP 센터에서 음악 수학 영어 등을 배우고 있다. 김옥란 선교사는 “센터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1~2등을 차지한다”고 귀띔했다. 금요일에는 성경퀴즈게임, 운동, 기독영화 상영, 성교육 세미나 등 특별활동 시간을 갖는다. CDP 센터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말씀을 통한 아이들의 신앙훈련이다.
페르난디또(19)는 제자훈련을 통해 하나님을 영접했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CDP 센터에 다니는 것을 반대했던 부모는 아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페르난디또는 “학교 선생님이 되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도와 매일 수십 개의 벽돌을 만들었던 곤살라(12)는 2년 전부터 꿈을 키우고 있다. 파란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파일럿이 되는 꿈. 곤살라는 “좋아하는 수학 공부보다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로스따히보스 CDP 센터는 다음세대를 향한 마을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세워졌다. 센터가 세워지기 전 방치된 아이들은 공원에 모여 마약을 하거나 술을 마셨다. 극빈층이 대부분이지만 학부모들은 가정당 7달러(약 8500원)씩, 십시일반으로 1156달러(약 137만원)의 돈을 모았다. 모아진 돈으로 땅(6000평)을 매입해 기아대책에 기증했다.
2007년부터 몰리엔디따 CDP 센터를 운영 중이던 김 선교사 부부는 지역개발비와 기아대책 후원금으로 2017년 로스따히보스 센터를 설립했다. 볼리비아 이민 2세대로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주민들과 소통하며 마을공동체를 변화시켰다. 센터의 사유화를 막기 위해 사단법인을 세우고 학교와 협력 사업을 전개해 나갔다.
학부모들은 직접 고랑을 파고 수도관 등을 설치하며 공사를 도왔다. 물품이 도난당할 것을 우려해 당번을 서서 공사현장도 지켰다. 센터를 오픈하던 날 마을 사람들은 함께 떡을 떼며 잔치를 벌였다.
로스따히보스 CDP 센터는 분반 공부를 할 수 있는 교실 두 곳과 사무실 공간을 갖췄다. 250여명의 아이를 수용하기 위한 교실과 놀이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CDP 센터에 가장 시급한 것은 물탱크다. 김 선교사는 “30년 전 만들어진 물탱크로 마을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다 보니 펌프가 망가지면 온종일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변변한 잔디 구장 없이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은 지난해 9월 기아대책이 주관한 ‘호프컵’에서 기적을 만들어냈다. 10개국 120여명의 후원 아동들이 참가한 대회 결승전에서 코트디부아르를 1대 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호프컵에 참가한 아이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에릭(16)은 “축구선수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가는 어머니, 형제들과 한 평 남짓한 곳에서 살고 있는 에릭은 “내가 처한 상황에 불평하기보다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삶을 배웠다”고 했다.
또 주장으로 참여했던 데이네르(18)는 대회를 통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라이문도(15)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열정을 배웠다. 송 목사는 아이들에게 축구화와 축구공을 선물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믿음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라”고 응원했다.
김 선교사는 “많은 분들의 후원과 기도로 CDP 센터가 존재하고 아이들이 꿈을 꾼다”며 “끝까지 선한 일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로스따히보스(볼리비아)=글·사진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