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남도영] 메디아파르트와 언론 위기

입력 2019-10-15 04:01

메디아파르트(Mediapart)는 2008년 창간된 프랑스의 인터넷 언론이다. ‘미디어(media)’와 ‘참여(participation)’라는 단어가 결합된 이름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 자유로운 정보’가 모토다. 메디아파르트는 상업 광고를 하지 않으며, 정부 지원도 받지 않는다. 대신 독자들의 구독료로 운영된다. 구독료는 월 11유로(1만4000원)인데, 10월 현재 구독자는 16만명이다. 올해에만 1만명이 늘었다.

메디아파르트의 성공은 탐사보도 덕분이었다. 창간을 주도한 에드위 플레넬은 르몽드의 가장 저명한 탐사전문기자였다. 메디아파르트는 2010년 화장품 재벌 로레알의 상속녀 릴리앙 베탕쿠르와 재산관리인의 대화 녹음테이프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베탕쿠르가 니콜라 사르코지 등 프랑스 정·관계 거물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는 내용이었다. 테이프를 듣기 위해 독자들이 모였다. 2012년에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리비아의 카다피로부터 5000만 유로(700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폭로했고, 그해 12월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초대 재무장관 제롬 카위자크의 스위스 비밀계좌와 탈세 의혹을 폭로했다. 대형 특종기사들이 홈페이지에 공개될 때마다 구독자가 늘었다. 메디아파르트는 (인터넷 시대에 적합하다고 알려진) 짧은 기사 대신 역사적 배경과 관점을 포함한 장문의 분석 기사와 탐사보도를 선택했다. 일부 독자는 “기사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깊이 있는 분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메디아파르트의 독자는 계속 증가했다.

지난주 파리에서 만난 메디아파르트의 운영책임자 마리 엘렌 스미에장은 “기사를 선택할 때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사인가’ ‘사회변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사인가’ ‘다른 곳에 없는 주제인가’를 중점적으로 고려한다”며 “부패와 비리 문제에 집중하는 공식 탐사팀이 있지만, 사실상 모든 기자가 탐사팀”이라고 말했다. 메디아파르트의 기자 수는 설립 당시보다 2배 늘어난 47명이다. 메디아파르트는 지역과 인종, 공동체를 대변할 수 있는 다양성과 전문성을 고려해 기자를 선발한다. 난민 문제, 이슬람 문제, 여성 문제, 노동 문제, 정치 문제 등 특정한 주제의 전문가를 기자로 선발하고, 이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취재해서 기사를 작성하도록 독려한다.

메디아파르트는 속보는 다루지 않는다. 지난 9월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이 사망했을 당시 메디아파르트는 시라크의 삶을 조망하는 기사 한 개만 올렸다. 스미에장은 “일반적인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기사는 많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을 실은 한 개의 기사만 올렸다”고 말했다. 메디아파르트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에 기사를 올리지 않는다. “거대 SNS기업이 여론과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메디아파르트 기사에 댓글을 달거나 공식 토론장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메디아파르트를 구독해야 한다. 구독자가 아니면 댓글을 달거나 글을 쓸 수 없다.

메디아파르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프랑스만의 독특한 사회적·문화적 맥락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 언론이 메디아파르트에 주목해온 이유는 ‘언론의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좋은 기사는 독자의 외면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신생 인터넷 언론의 선언에 프랑스 독자들은 기꺼이 호응했다. 한국 언론이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기사 유통은 포털에 종속됐고, 광고주들로부터도 외면받기 시작했다. 언론의 존재가치인 독자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메디아파르트의 사례는 위기의 본질이 포털이나 기술의 발전, 광고와 같은 것들이 아님을 보여준다. ‘언론의 위기’가 아닌 ‘한국 언론사의 위기’다. 좋은 언론은 언제나 필요하다.

남도영 디지털뉴스센터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