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위험한 상태다. 이런저런 지표들이 많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가 된 것은 충격이고 상징적이다.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아마도 건국 이래 처음이지 않을까. 경제성장률, 수출증가율, 실업률 등 뭐 하나 좋은 신호가 없다. 상황이 이런데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경제 이야기가 한가롭게 들릴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경제학자들이 모이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어쩌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 지경이 된 데에는 경제학자들의 잘못도 분명 있을 터, 반성문 쓰는 심정으로 상황을 짚어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효율을 생명처럼 여기고 효율을 구현하는 체제로서 시장을 신봉한다. 경제학에서 효율이란 조금의 낭비 없이 최선의 방법으로 자원을 동원해 유용한 것을 생산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꼭 필요해서 높은 금전적 가치를 매기는 사람에게 소비되는 상태를 말한다. 노동력이든 돈이든 자연자원이든 모두 다 귀하기 때문에 낭비되는 것은 죄악에 가깝다. 시장에서는 그 귀한 것들과 귀한 것들을 동원해 만든 유용한 것들이 얼마나 귀하고 유용한지 가격이 매겨져 거래된다. 많은 사람이 원하는 유용한 것을 만들어 임금이 높은 일자리는 구직자를 모이게 하고, 사람들이 원해서 많이 거래되는 물건은 더 많은 자원이 쓰여 만들어진다.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데 시장이 가장 나은 체제라고 이론적으로 역사적으로 검증되었기에 효율을 중시하는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믿는다. 물론 시장이 효율을 달성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경제학자들도 인정한다. 시장이 효율을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을 시장실패라 하는데,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은 시장실패를 심각하게 보는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시장의 미비한 부분을 교정하는 것 이상의 정부 개입은 대체로 부정적으로 본다. 완전무결하지는 않아도 시장이 최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학자가 어떤 정책을 반시장적이라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점잖게 욕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장은 냉혹하고 반감을 일으키는 존재다. 시장은 능력 있고 가진 자만 대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한없이 구렁텅이로 내몰 수 있는 체제다. 시장의 결과가 불공평하다는 것만으로도 시장을 심적으로 거부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내 노동력이 얼마나 귀한지, 내가 만든 것이 얼마나 유용한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것 자체가 마음 불편할 수도 있고, 돈만 따지는 시장이 고상하지 않고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대중에게 ‘반시장적’이라는 표현은 어떠한 공감도 일으키지 못한다. 시장에 거스르는 것이 왜 바람직하지 않은지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효율이 달성되면 그 결과는 경제 성장과 번영으로 나타난다. 몇 년 전 공학박사인 지인으로부터 “꼭 성장을 해야 해? 그냥 있는 거 사이좋게 나눠 살면 안 되나?”라는 질문을 받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진 적이 있다. 사실 시장을 신봉하는 것은 그 과실인 성장과 번영을 누리고자 함인데, 그게 필요치 않다는 사람이라면 경제학으로 설득할 방법이 막연하다. 하지만 성장과 번영의 혜택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돌아간다. 경제가 성장해야 일자리가 더 생기고, 사회가 번영해야 문화와 예술도 더 많이 꽃필 수 있다. 비자 없이 외국에 나간다든지 서양 국가들을 여행하면서 예전보다 대우받는다든지 하는 것들도 부수적인 혜택이다. 개인 차원에서 1인당 GDP가 연간 1%씩 성장할 때와 3%씩 성장할 때를 비교하면, 한 세대인 30년 후에 개인의 평균 소득이 증가한 정도는 약 33% 대 135%로 엄청난 격차가 생긴다.
성장과 번영은 좋은 것이다. 이에 회의적인 시각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 때문에 생긴다. 이를 완화하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방법은 최대한 시장 친화적이어야 한다. 공감받기 어려운 경제학이지만 경제학자들이 떼로 반시장적이라는 정책은 정부가 제발 포기하면 좋겠다.
민세진(동국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