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총리, 아베 3~4번 만나 대통령 친서 전달할 듯

입력 2019-10-14 04:01

이낙연(사진) 국무총리가 오는 22일 일왕 즉위식에 정부 대표로 참석한다. 이 총리는 2박3일간의 방일 기간 중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최소 서너 차례는 만날 것으로 전망된다. 두 총리 간 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서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해빙 모드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대가 흘러나온다.

국무조정실은 이 총리가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 참석차 22~24일 방일한다고 13일 밝혔다. 이 총리는 22일 낮 즉위식에 이어 저녁 궁정 연회에 참석한다. 둘 다 아베 총리가 참석하는 행사다. 23일에는 아베 총리가 주최하는 만찬에 이 총리가 참석한다. 따라서 최소 세 차례의 공식 행사에서 양국 총리가 만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별도로 국무조정실은 “오늘 이 총리의 일왕 즉위식 참석을 일본에 공식 통보했다”며 “아베 총리 등 주요 인사들과의 면담 일정을 구체적으로 조율할 계획”이라고 밝혀 단독회담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 총리와 아베 총리의 단독회담은 23일 만찬을 전후해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회담이 성사된다면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처음 열리는 양국 최고위급 대화다. 한·일 정상 간 회담은 지난달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열릴 수 있었지만 양국 간 갈등 현안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여서 모두 무산됐다.

이 총리는 이번 회담에서 대화와 만남 재개를 촉구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나 우리 정부의 징용 배상 문제 해법을 아베 총리에게 전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정부 내 대표적 ‘지일파’인 이 총리가 정부 대표로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는 것을 두고 심각한 갈등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일본 정부도 일본을 잘 아는 이 총리의 방일을 기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현지 언론들도 지난 7일부터 일찌감치 이 총리의 방일을 기정사실화하는 보도를 내놨다.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출신인 이 총리는 의원 시절 한일의원연맹에서 활동하는 등 일본 정·재계 인사들과의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아베 총리와도 여러 차례 만났다. 이 총리는 2005년 아베 총리가 의원 신분으로 방한했을 때 서울 삼청각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했을 때도 공식 만남을 가졌다.

두 총리의 이번 만남은 갈등을 해소할 좋은 기회지만, 현안에 대한 양국 간 입장차는 여전히 큰 상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번 이 총리의 방일로 갈등이 단번에 해결되기는 어렵다”며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야 일본도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도 “양국의 기본 입장이 전혀 바뀌지 않은 상태”라며 “현재로서는 대화의 전기가 마련됐다는 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직접 방일이 아니어서 돌파구 마련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극적인 태도 변화가 없기 때문에 대통령의 일왕 즉위식 참석을 추진하지 않고 총리 참석으로 대체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