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진창수] 지금이 한·일 대화의 적기

입력 2019-10-14 03:59

지난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한·일 양국의 갈등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일본은 수출 규제 조치에 이어 아예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 문재인정부도 대응 차원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다. 한·일 양국의 갈등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관계에도 부정적인 파장을 끼쳤다.

일본 우익들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당할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인식이었다. 최근 정부도 밝혔듯이 수출 규제로 인한 피해는 그다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제살 깎기 공격’을 미루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일본이 수출 규제를 임의적으로 사용할 경우 일본의 피해도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국민들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일부 소비재 품목에서는 일본 수입이 급감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한국 관광객이 줄면서 타격을 입고 있다. 하지만 홍콩 데모로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당분간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일 양국의 피해가 적은 지금이 대화의 시간이다. 좀 더 감정적이 되면 대화는 불가능하고 인내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미국이 적극적으로 한·일 관계에 중재해주기를 바랐지만 그 성과는 미미하다. 돌아온 것은 지소미아 파기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었다. 미국은 문정부에 11월 22일까지 지소미아를 되돌리라고 말미를 주고 있다. 한·일 양국이 선전포고는 했지만,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됐다.

지금이야말로 한·일 양국은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한 솔직한 대화를 해야 한다. 최근 일본 정계 분위기는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악화돼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4일과 8일 연속적으로 한국에 대해 ‘중요한 이웃’이라고 하자 한국에서는 아베가 양국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베의 의도는 ‘한국은 우선 국제법에 따라 국가 간 약속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뒀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아베의 속내는 ‘징용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일 관계 개선은 없다’는 것이다. 아베의 대한(對韓) 강경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위안부 재단 해산에 대한 배신감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아베는 더 이상 한·일 관계 개선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 정계의 후문이다.

최근에는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도 한국 정치가들이 대화하자고 해도 잘 만나 주지 않는다. 자민당 내 유력 정치가조차 ‘한·일 관계를 말하면 많은 비난이 쏟아져 수습이 힘들다’고 말한다. 심지어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한 야당 당수의 발언도 일본 국민들의 반발로 철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도 전략적 판단을 한다면 현재의 한·일 관계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베 관저 내에서도 ‘한·일 관계는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국의 대일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서는 일본 사회의 여론 환기는 무엇보다 필요하다. 일본 여론이 일방적으로 한국만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힘들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한·일 관계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앞으로 한·일 관계 일정을 고려해 대화의 계기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는 이낙연 총리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문정부가 제안한 1+1+α(한국기업+일본기업+한국정부?)에 대한 진전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리고 지소미아가 실제로 종료되는 11월 22일까지가 중요하다. 한·일 관계에서도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안보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북한 핵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지소미아 재검토가 이뤄져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지금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한·일 양국이 전략적 대화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