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학교공부를 마치거나 쉬는 시간이 되면 운동장에서 오징어놀이와 비행기놀이를 자주 했다. 운동장에 오징어 모양으로 금을 그려놓고 20여명이 두 편으로 나뉘어 승부를 내는 놀이였다. 우리는 이 놀이를 ‘오징어가이상’ ‘비행가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가이상(かいせん)’이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뜻의 일본말인 것을 몰랐다. 비행기놀이도 문어 모양처럼 30~40m가 되도록 그려놓고 편을 나눠 머리 부분부터 꼬리 부분까지 통과하는 놀이였다.
이 시절 아이들의 놀이는 주로 구슬치기 술래잡기 제기차기 팽이치기였는데, 모두 또래들과 함께 어울려야 놀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 게임에 몰입해 있을 뿐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놀이문화가 없다고 봐야 할 정도로 아이들은 정적(靜的)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휴대폰에 몰입되어 있다. 휴대폰은 친구가 되고 놀이기구가 되기도 하지만 인간관계를 빼앗거나 침묵하게 만든다.
요즘 신앙공동체에 소속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목회의 비중이 컸던 심방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교회로부터 걸려오는 전화가 부담된다며 거절하는 사람도 있다. 교회 활동에 참여하기를 권하지 말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교회에 소속하는 것을 불편한 일로 받아들이는 요즘 교인들의 생각이다. 교회를 마치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것처럼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심리를 어떻게 이해할까? 믿음으로 사는 교인은 신앙공동체에 소속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 교회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관심은 사랑의 표현인데, 무관심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이런 정서가 교회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신앙공동체의 본질을 찾기가 어렵다.
교회를 문자적으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ecclesia)’이라고 정의한다. 신앙공동체의 본질은 ‘모임’에 있다. 교회다움은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즐겁고 행복한 경험으로 나타난다. 모임에 참여하지 않고 소속감이 없는 성도가 많아지면 교회라고 말할 수 없다. 교회는 관계 속에서 잔치하는 즐거움이 많아야 한다. 함께함으로 서로를 알아가고 생각을 나누고 삶에 도움이 되어야 교회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어울리는 사랑의 교제가 천국을 확장한다.
서로 사귐이 없으면 고독에 빠지기 쉽다. 혼자 있는 사람은 불안과 초조함에 사로잡히며 우울한 감정이 커진다. 이런 사람은 자신만이 불행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크다. 교회는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습과 역할로 평가된다. 고독 속에서 ‘혼밥’과 ‘혼술’을 먹는 사람들처럼 신앙공동체도 덩달아 고독해지면 안 된다. 신앙공동체는 오징어놀이와 비행기놀이하는 아이들처럼 함께하는 아름다운 교제가 많아야 한다.
유영설 여주 중앙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