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건보재정 지출 누수 경계… 쓰여야 할 곳에 쓰이게 하자”

입력 2019-10-13 20:55 수정 2019-10-15 17:49
‘문재인 케어’ 추진을 위한 건강보험 재정확충 방안에 대해 의료계, 산업계, 환자 및 시민단체 대표가 모여 논의를 진행했다.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강화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가 시행 3년차를 맞았다. 하지만 여전히 건강보험의 재정지속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건강보험 재정을 유지하면서 의료비 부담을 덜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 11층 국제회의장에 쿠키뉴스 주최, 쿠키건강TV 주관으로 열린 ‘건강보험 재정관리를 위한 민간단체 좌담회’에서 의료계와 시민 및 환자단체, 산업계가 머리를 맞댔다. 이날 좌담회 주제는 ‘건강보험 지출관리방안’으로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공동대표 ▲대한병원협회 유인상 보험위원장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이영신 부회장 등이 참석해 효과적인 관리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보장성 강화를 위해 정부는 건강보험 누적적립금 20조와 국고지원 예산 등을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기대수명 연장으로 인한 고령화와 저출산 등 다가오는 사회적 변화를 감안하면 건강보험 재정의 지출합리화와 누수요인 방지, 그리고 새로운 재정 확보 등 획기적인 방안이 요구되는 상황. 이 자리에 모인 민간단체 대표자들은 모두 건강보험 재정 효율화 필요성에 공감했다. 다만 시기와 방법 등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이견을 보이기도 했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

좌장을 맡은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는 “국민의 건강을 위해 많은 서비스와 치료제가 얼마나 제대로 쓰이는지, 또 지불하는 가격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적당한지를 복합적으로 아우르는 것이 지출관리다. 각 단체에 따라 지출을 보는 시각도 다르지 않느냐”며 논의를 이끌었다.


이에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지난 10년간(2009~2018년) 건강보험 지출증가율을 보면 연평균 7.9%다. 통상 의료비 지출이 국민의 경제상황과 비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국민 1인당 실질 GDP 규모는 같은 기간 대략 2%대다. 경제상황에 비해 의료비 지출이 좀 과도한 수준이라 볼 수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만, 5~6년 내 보장성 70%라는 목표는 달성하더라도 80% 수준인 OECD국가에 비하면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니다. 보장성 수치보다 내용과 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급여의 급여화’가 정책의 한 목표인데, 비급여를 모두 급여화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꼭 필요한 것들을 급여화 하되, 그 외의 것들은 정리가 필요하다”며 “건강보험 급여혜택으로 모든 진료가 가능하도록 하고, 비급여는 금지하는 정책수단도 필요하다. 대신 공급자에 대한 보상은 제대로 가치를 평가하되, 현재의 행위 중심의 보상방식이 아니라 공급부분의 총량이나 총액을 중심으로 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에게 걷는 건강보험료 외에 추가 재정 확보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제일 중요한 것이 재정이다. 앞으로는 건강보험료만으로는 부족하며, 지출합리화와 국고 지원 등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에 환자들도 공감하고 있다. 재정에 대한 위기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선 우리나라가 OECD국가 가운데 특징적인 것이 외래 진료가 많고 입원일수가 높다. 중소병원에서 찍은 MRI가 병원 간 연계가 되지 않아 상급종합병원에서 다시 찍어야 하는 등 자원의 낭비가 심하다. 외래진료·입원일수를 줄이고, 영상자료를 재사용하는 방법 등을 찾아 시행한다면 의료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국가 차원의 체계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약제비 부분의 경우 고가약 그리고 사용량 부문을 조절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고가 신약의 경우 사후평가를 통해 급여기준을 조율하고, 불필요한 처방 감소, 국내 제약사를 육성하는 방편으로 가격이 낮은 복제약(제네릭) 활성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병원계는 의료비 누수 방지 및 재정 효율성 강화에 적극 협조 하겠다면서도 ‘공급자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유인상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은 “공급자단체인 의료기관들은 건강보험 재정 문제에 대한 공포심이 있다. 재정문제에 관해서는 의료기관의 책임으로 돌아왔고, 이에 대한 희생을 요구했던 정책들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명확한 분류가 없고 환자 본인의 선택권이 자유롭기 때문에 발생하는 의료쇼핑, 중복 및 과잉의료 등은 공급자로서도 고민스러운 부분이고, 재원일수를 줄이고 부적격자 불법이용을 관리하기 위한 신분증 확인 등의 역할은 병원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보장성강화 정책이 철저한 검증 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유 위원장은 “의료비 누수를 줄이는 부분은 병원계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정확하지 않거나 증명되지 않은 부분의 의료보장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보장성강화 정책 가운데 선택 진료 폐지, 초음파, MRI 급여화 등은 양날의 검으로, 이로 인한 건보재정의 어려움은 예측됐던 일이기 때문에 신경 쓰고 조심하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는 건강보험재정이 꼭 쓰여야 할 때 쓰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중복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곳에 대한 보장은 지양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미래 의료기술의 혁신’을 감안한 생태계 조성과 지출의 합리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효과적이고 가격이 높은 신약이나 의료기기나 꾸준히 나올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신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향후 10년 내에 다가올 변화 가운데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초고령사회, 한국경기의 둔화, 그리고 의료기술의 혁신발전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도 의료재정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재원 안에서 합리적으로 의료비를 지출하는 방안을 찾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의약품 가운데 제산제와 소화제, 항생제 처방량이 특히 높다. 소화제 사용량은 OECD평균의 2.6배, 제산제는 2.2배, 항생제는 2.1배 사용량이 높다. 양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가, 양을 줄여서 남은 재정을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정형선 교수는 “의료비가 과연 필요한 곳에 쓰이는 지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 각자 생각하는 대안이 있느냐”고 논제를 환기했다. ‘보건의료빅데이터’가 의료비를 절감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떠올랐다. 안기종 대표는 “기존에는 보건의료 빅데이터가 영리추구를 위해 오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의료기관의 진료기록은 산업적이거나 상업적이지 않다. 최근 허가의약품의 사후평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적이 있는데, 환자들의 진료기록이 신약에 대한 적정한 급여기준을 정하고, 효과가 떨어지는 약은 급여기준에서 빼는 등 등 공익적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며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의료분야 데이터는 공익적인 영역에 부합하는 경우 환자들도 적극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보건의료빅데이터 활용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김준현 대표는 “IT 기반 하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보다 환자들이 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를 받는지 이유부터 살펴야 한다. 진료기록이 공유되기 시작하면 상업적 이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유인상 위원장은 “IT강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지만 병원에선 여전히 환자 영상자료를 CD를 구워서 제공하는 등 기술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의료기관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한다. 이에 대한 보상체계가 확립된다면 병원도 충분히 개선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영신 부회장은 “해외에서는 이미 실제 환자들의 진료기록인 ‘리얼월드 데이터’로 새로운 치료법을 찾거나 정책을 수립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조심스럽게 다룬다면 좋게 사용될 부분이 많다고 본다”며 “다만, 우리나라의 의료데이터의 경우 병원마다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표준화하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면역항암제를 비롯한 새로운 고가약의 등장도 의료비 지출 증가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산업계는 아직 우리나라는 전체 약제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신약이 급여화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영신 부회장은 “협회가 최근 5년간 미국에서는 등재됐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등재되지 않은 신약을 급여화했을 때 영향을 알아보니 약제비 총액에 미치는 영향이 약 1% 밖에 되지 않았다”며 “정확한 수치를 보지 않고 신약의 가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냉철하게 분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러나 환자단체들은 약가에 대한 평가가 보다 면밀히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안기종 대표는 “최근 4000~5000억원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건강보험료 1%를 올렸다. 특히 고가약에 드는 비용이 올랐기 때문이다. 과연 건강보험에서 비싼약을 어디까지 보장할 수 있는지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한번 급여화 하면 꾸준히 많은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준현 대표도 “지금의 약값이 적정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가의 항암제도 시판되고 나면 생존률 향상 등 효능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고 의견을 더 했다. 유인상 위원장은 “면역항암제의 경우 양날의 검인 부분이 많다. 환자들을 보면 건보재정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지만, 그쪽에 너무 많은 비용을 쓰게 되면 전체 재정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고가약에 대한 별도의 체계를 만들거나 지불방식 보완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형선 교수는 ”건강보험재정지출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보건의료서비스에는 어마어마한 다양성이 내포되어 있어 짧은 시간 안에 논의하기 쉽지 않았다”며 “앞으로 여러 자리에서 계속 논의가 이뤄져야 하겠고, 건강보험재정 지출 효율화를 위한 합리적 방안을 찾아가는 노력들이 계속되길 바란다”고 정리했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