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검거돼 처벌까지 끝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한 이춘재(56)가 이 사건에 상당히 ‘유의미한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10일 브리핑을 통해 “이씨의 8차 사건 관련 진술에 유의미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밝힌 유의미한 진술은 구체적인 범행 수법에 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춘재의 진술이 당시 범행과 상당 부분 일치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경찰이 이춘재의 자백을 수사에 혼선을 주거나 ‘소영웅 심리’로 허세를 부린 거짓말로 보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경찰은 우선 이춘재의 자백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해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 기록과 범인으로 윤모(당시 22세)씨를 지목해 검찰에 송치한 형사 전원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또 8차 사건 당시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토끼풀 등 증거물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유전자(DNA)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있을 경우 DNA 분석도 진행할 계획이다. 또 이 사건과 유사한 수법의 미제 절도사건에서 용의자 흔적으로 보이는 창호지도 국과수에 보냈다.
이 두 증거품은 당시 의미 있는 증거로 여겨지지 않아 검찰에 송치되지 않은 탓에 현재 경찰이 보관하고 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창호지는 완전히 다른 사건의 증거물이지만 수법이 비슷해 동일범이 아닐까 생각해 분석을 의뢰한 것”이라며 “다만 당시에도 증거로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에 이씨의 자백 신빙성을 확인할 만한 게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국과수에 윤씨 것으로 확정됐던 범행 현장의 체모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분석 결과에 대한 재검증도 요청했다. 또 이춘재의 체모도 국과수에 보내 두 가지의 DNA가 일치하는지 여부도 확인할 방침이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당시 13세)양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한편 당시 윤씨를 검거한 형사들은 최근 경찰 조사에서 “그때는 국과수의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으로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며 “국과수 분석 결과가 확실하다는 생각에 윤씨를 불러 조사했기 때문에 고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범인으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진 윤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하던 중 감형받아 수감 20년 만인 2009년 가석방됐다. 그는 수감 중에도 “당시 고문을 받아 허위자백했다”며 억울함으로 호소했고, 재판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했다. 윤씨는 이춘재가 8차 사건 진범이라는 자백을 한 뒤 이 사건에 대한 재심을 법원에 청구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윤씨의 재심청구는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99년)과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2000년) 재심을 맡아 무죄를 이끌었던 박준영 변호사가 맡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화성연쇄살인 2차와 7차 사건 피의자 변호를 맡아 무죄를 받아낸 김칠준 변호사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통해 “당시 경찰은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잘 못 쓰는 윤씨에게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고 한다. 지금의 경찰이 이 사건을 바로잡길 바란다.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변호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