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 장르였던 판타지극, 요즘 시청률은 왜 부진할까

입력 2019-10-11 04:03
최근 브라운관에서 독특한 상상력을 버무린 판타지극의 부진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냉동인간’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낸 로맨틱 코미디 ‘날 녹여주오’(tvN)의 한 장면. 방송화면 캡처

때는 1999년, 두 남녀가 ‘냉동인간 프로젝트’ 촬영을 위해 냉동 캡슐 안에 들어간다. 한 명은 잘나가는 스타 PD고 한 명은 배짱 두둑한 취업준비생. 그런데 이게 웬걸, 하루 만에 깰 예정이었던 둘은 무려 20년이 지나서 깨어나고 만다. 여기에는 모종의 음모가 숨어있는데….

이 작품은 지난달 28일부터 방송 중인 ‘날 녹여주오’(tvN). 청량함을 뽐내는 배우 지창욱 원진아가 주연으로 나서 화제를 모았다. 백미경 작가의 차기작이라는 점도 기대에 불을 지폈는데, ‘힘쎈여자 도봉순’(JTBC·2017) 등에서 재치 있는 필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날 녹여주오’에도 발랄한 상상력이 담겨있다. 시간의 엇갈림으로 생기는 묘한 리듬감이 백미다. 여전히 젊은 PD 마동찬(지창욱)과 방송국 국장이 된 조연출 현기(임원희·이홍기)의 대화 장면이나 스마트폰 등을 어려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간단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시청률은 제자리 상태다. 4부까지 전파를 탄 극은 3%대를 맴돌고 있다. 아직 로맨스가 불붙지 않은 게 한몫하겠지만, 판타지가 설득력 있게 풀어지지 못한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20년 후 깨어난 인물 이야기보다 코믹함이나 속도감을 강조한 게 되레 몰입감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됐다”고 했다.

‘날 녹여주오’의 문제만은 아니다. 최근 들어 판타지극의 부진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종영한 ‘웰컴2라이프’(MBC)는 평행세계라는 독특한 설정을 버무렸으나 시청률은 4~6%에 그쳤다. 배우들의 호연이 두드러졌기에 아쉬움은 더 진하다.

평행세계 소재가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못했던 점이 상승세를 가로막은 이유 중 하나로 풀이된다. 악질 변호사 이재상(정지훈)은 교통사고로 자신이 정의로운 검사로 활약하는 또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이 세상은 ‘웬수’였던 형사 라시온(임지연)과 가정을 꾸리는 등 정반대 일들이 펼쳐지는 곳이었는데, 정지훈의 능청스러운 연기에도 몰입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이재상은 새 세계에 너무나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판타지극은 오랜 시간 브라운관의 주력 장르였다. ‘별에서 온 그대’(SBS·2013) 등 숱한 작품이 이채로운 소재로 시청자를 사로잡아왔다. 하지만 최근엔 ‘호텔 델루나’(tvN) 등 몇 작품을 빼곤 ‘절대 그이’(SBS) ‘어비스’ ‘악마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이상 tvN) 등 대부분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브라운관이 현실감 넘치는 작품들로 재조정되면서 커진 판타지에 대한 이질감이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넷플릭스를 거치며 급격히 높아진 시청자 안목을 이유로 꼽았다. 공 평론가는 “판타지는 특히 개연성 있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장르”라며 “쟁쟁한 글로벌 콘텐츠 속 구체적 문법을 갖춘 극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