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선 당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생활을 볼 수 있습니다. 빈부의 문제는 항상 존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난한 자는 항상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사회나 빈부의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고 요즘엔 빈부 갈등으로 인한 신조어까지 생겨났습니다.
첫째, 의상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눅 16:19) 부자의 의상은 자색 옷과 고운 베옷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 부자들도 의상에 대한 비용에 부담이 없습니다. 부자가 입은 의상, 가방, 신발, 귀금속 등을 합하면 얼마인지 아십니까? 그러나 가난한 자들의 의상은 오래 입을 옷으로 세탁이 편리한 재질을 선택하고 저렴한 값으로 사려고 합니다.
둘째, 색상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눅 16:19) 당시 부자의 의상 색상을 ‘자색’과 ‘고운’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7장 25절에서 부자들의 의상 색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부자들의 의상 색상에서 밝고 곱고 화려하고 가벼운 파스텔 색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의 의상은 대체로 어둡고 더러워져도 오래 입을 수 있는 색상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문화생활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눅 16:19~20) 부자는 호화롭게 즐기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병든 몸으로 대문 앞에서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나사로는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요즈음 부자는 아프지 않아도 주기적으로 검진을 해 질병을 조기 발견하여 치료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많이 아파야 의사를 찾아갑니다.
넷째, 음식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눅 16:21) 부자와 나사로가 먹는 음식을 보세요. 부자는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값싼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습니다. 부자는 먹고 싶은 것을 먹습니다. 가난한 자는 배고파서 먹습니다. 부자는 음식값을 보지 않고 주문합니다. 가난한 자는 값을 생각하고 주문합니다. 부자는 음식의 질을 생각합니다. 가난한 자는 음식의 양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생활을 살펴보고 있습니다.(눅 16:22~26)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 예수님께서 부유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부유함으로 하나님의 의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합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형제들이 자신과 같이 살지 않도록 간청합니다. 불 속에서 가족들에게 나사로를 보내 달라고 간청하는 부자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습니다.(눅 16:22~31) 가난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누구와 비교할 때 빈부가 결정됩니다. 당신은 누구와 비교하십니까? 비교 대상에 따라 자신이 부자일 수도 있고 가난한 자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가난한 자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시 37:14)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십니다.(출 22:25~27) 이사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오실 것(사 61:1)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의 속성이 단순한 물질적 궁핍의 차원을 넘어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눅 4:18)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 5:3)
당신은 부자입니까? 가난한 자입니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처럼 죽을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의 영생 말씀을 먹으며,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나사로가 갔던 하나님 나라로 이동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김만섭 목사(영동교회)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인 영동교회는 1985년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서 개척돼 지금까지 같은 지역에 있습니다. 지역사회 복음화, 터키와 이슬람권 선교사역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