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손잡고 다닌 교회는 좋은 놀이터였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나는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는 것을 가장 좋아해 고등학교 때는 주말에 공사장에서 일해서 돈을 모았다. 물론 대학에 가지 않고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를 배웠다. 자동차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다. 자동차 정비공장에 취업해 여름날 작업복이 땀에 흠뻑 젖도록 일하고 나면 나는 늘 행복했다. 물론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았다.
군대도 자동차 정비병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카츄사 선발 시험을 보라고 했다. 정비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고민 끝에 용감하게 ‘시험을 보지 않겠습니다’ 했더니 군화가 날아오며 ‘너 그냥 갈래, 맞고 갈래?’ 해서 바로 나왔다. 그런데 시험을 대충 봐서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합격했다. 영어를 거의 못 하는 내겐 충격을 넘어 공포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하나님이 생각나 새벽기도를 나갔다. “하나님! 제가 영어를 어떻게 합니까? 제발 다시 정비병으로 가게 해주세요.” 그러자 기도 응답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차만 차냐? 미군차를 고치면 되잖아!’ 그러나 미군 정비병이 아니라 미군 보병 부대에 배치받았다.
마냥 벙어리로 견딜 수 없어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조금씩 취미가 붙어 제대하고 바로 재수학원에 갔다. 수학에 시그마란 기호도 학원에서 처음 볼 정도였으니 공부가 정말 힘들었지만 피나는 노력을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서 교회에서 청년부 회장도 맡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수능에서 대박이 나 사촌형 추천으로 교대에 지원했다. 내신은 15등급 중 13등급이었지만 졸업 5년이 지나 수능점수로 내신 적용을 받아 3등급으로 춘천교대에 특차로 합격했다. 시그마도 몰랐던 나를 주변에서는 인간 승리라고 말했다. 모두 하나님의 도움이라 감사하며 대학 4년 동안 선교단체에서 열심히 신앙훈련을 받았다.
오직 주를 위하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희망을 주는 교사가 되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내 삶은 세상의 낙을 열심히 좇았다. 그때 어느 선생님의 권유로 한마음교회 작은교회에 참가했다. 거기서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인 것과 제자들의 변화를 통해서 부활이 내게 실제가 되고 주되심의 문제도 선명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2000년 전 예수님을, 내가 십자가에 못 박지는 않았지만 장소만 바꿔 내 마음에서 예수를 죽였다’는 어느 자매의 회개 간증이 있었다. “하나님! 저 회개는 뭐죠? 죄가 저렇게 무서운 것이었나요?” 하며 간절히 기도하는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살았음을 알려주었다. ‘내 재산과 가족을 버리라고요? 그냥 예수님이 죽어주세요. 내가 지금 힘든데 당신의 말씀을 따르라고요? 원수를 사랑하고 항상 기뻐하라고요? 저는 못해요. 그냥 예수님이 죽어주세요.’ 바로 이런 죄, 결국 내가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것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꼬꾸라져 예수님을 참 주인으로 모셨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니 그 크신 사랑이 나를 덮었다. 내가 가진 재물을 포기하라는 말씀 뒤에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라는 말씀이 있었고 힘든 일이 있어도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뒤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있었다. 내가 교사를 하는 이유가 선명해지며 내가 살려야 할 교실의 아이들이 보였다.
학교에는 다양한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많다. 게임에 빠진 아이, 친구 관계에서 고민하는 아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일일이 상담을 하며 복음을 전한다. 문제가 해결되고 조금씩 변하는 아이들을 보면 감사만 나온다. 정비사를 꿈꾸던 나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교사가 되게 해주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남은 인생,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가장 훌륭한 영혼의 정비사가 되리라 다짐한다.
장용준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