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늘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수시가 공정해졌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
교육부의 당면 과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자녀 특혜 의혹은 결국 불똥이 대입 제도로 튀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입 전반 재검토” 지시에 교육부는 부랴부랴 새 대입제도를 다음 달 중에 내놓기로 했다. 교육부는 60~70%까지 치솟은 정시 확대 여론을 거스르고 수시를 손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부모 찬스’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비교과 영역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폐지하는 방식인데 반응은 싸늘하다. 대입을 둘러싼 불공정성과 그에 따른 불신은 훨씬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학교와 교사마다 달라지는 ‘복불복 학생부’다.
학교·교사 역량에 달린 학생부가 공정?
학생부는 담임교사와 과목 담당 교사들, 학생, 학부모가 공동으로 작성하는 한 학생의 성장기다. 학생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쓰는 사람의 능력이 질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두 학생의 실제 학생부를 비교해봤다(2면 그래픽 참조). A학생은 일반고 3학년으로 내신이 3.2등급이다. B학생은 특목고 3학년으로 내신 4.5등급이다.
입학사정관 입장에서 누구를 뽑을까. 일단 학생부 두께에서 차이가 난다. A학생은 학생부가 달랑 15쪽이다. B학생은 A학생보다 배 많은 32쪽이다. 분량도 분량이지만 내용에서 차이가 크다. 아직 수시인지 정시인지 결정하지 않은 상태인 1학년의 창의적 체험활동 부분을 발췌해 비교해봤다. A학생의 기록은 마치 정부 백서를 보는 듯 무미건조하다. “심폐소생술 이론 및 실습 교육-환자 발생 시 최초 목격자의 심폐소생술 실시 여부가 환자 생존에 중요한 요소임을 인지하고 (중략) 자동심장충격기의 중요성 및 사용법을 익힘” “성교육-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평등 문화 만들기 교육을 이수함”이라고 썼다.
B학생 기록은 어떨까. 학생이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성취를 거뒀는지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두 나라의 문화, 특히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한·일 대중가요 비교를 통한 한·일 관계의 문화적 해결 방안’이란 소논문을 작성하고 (중략) 일본 문화뿐 아니라 일본 근대사와 일본 시장에 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다른 단락에선 “아일랜드 대기근이나 콜럼버스의 신항로 발견 같은 역사적 사건들과 감자의 관련성을 찾고 논리적 추론 과정을 경험했다”고 돼 있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어떤 경험과 능력을 쌓았으며 이를 위해 학생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상세히 기술돼 있다.
내신 등급은 일반고 학생이 조금 더 높다. 그러나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하는 정성평가인 학종이라면 B학생이 더욱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두 학생부의 차이가 교사의 자질 때문인지, 학생의 역량 차이 때문인지, 부모가 개입한 이유인지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입시 전문가들은 “학생의 역량으로만 학생부가 쓰이는 건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A학생 학생부에 쓰인 성교육 관련 내용을 B학생 담당 교사들이 작성했다면 내용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B학생의 감자 관련 부분도 A학생 담당교사라면 “동서양 문화교류 활동-세계사 시간에 배운 지식을 감자와 연관해 학습함” 정도로 기술됐을 가능성이 크다.
학생부 두께는 성적순
전국의 고교생들은 학생부에서 공정한 평가를 받고 있을까. 10개의 노력을 기울여도 2개 정도만 인정받는 학생이 있는 반면 2개만 해도 10개를 했다고 평가받는 학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떤 지역에 사는지, 어떤 학교에 진학했는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지 특목고인지 일반고인지 등이 변수로 작용한다.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나 교사 성향도 무시하기 어렵다. 학생·학부모와 소통해서 내용을 기록하는 교사를 만나는 것과 학생부는 교사 고유 권한이니 토달지 말라는 권위적인 교사를 만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학교가 입시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을 밀어주는 경우도 학종의 공정성을 해하는 문제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2020학년도 일반고 수시 지원자의 학생부 130명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학생부 페이지 수는 내신등급과 정비례 관계에 있었다.
1.0~1.5등급 구간에 있는 학생의 학생부 평균 페이지 수는 21.8이었다. 2.0~2.5등급은 17.7, 3.5~4.0등급은 15.2였다. 5.0등급 이하는 10.5에 불과했다. 교내 수상 기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1.0~1.5등급의 경우 평균 60.1회 수상했다. 가장 많은 학생이 99번, 가장 적은 학생이 26번이었다. 내신등급이 떨어질수록 수상 횟수도 줄어드는 경향이 뚜렷했다.
2.0~2.5등급은 16.6회, 3.5~4.0등급은 10.3회였다. 5등급 이하는 1.5회에 불과했다. 내신 성적이 좋은 학생이 상대적으로 학교생활을 충실히 했다고 여긴다면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학종의 도입 취지는 교과 성적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학생의 흥미와 적성, 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 판단해 학생을 뽑겠다는 것이다. 교과 성적에 따라 주어지는 기회가 다르게 부여되는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예를 들어 종로학원이 공개한 한 외국어고 학생의 학생부를 보면 내신은 5.8등급이지만 학생부 페이지는 35장, 수상 경력은 22회에 달했다.
정부와 여당의 구상처럼 학생부에서 비교과 요소를 덜어내고 “공정해졌다”고 주장한다면 입학사정관제 도입부터 현재 학종까지 이어진 ‘땜질 처방’을 반복하는 것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땜질 처방에 따른 또다른 부작용 우려도 나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비교과를 없애면 학교내신 교과 성적이 더 중요해진다. 전국 고교들의 격차가 큰 상황에서 주요 대학들은 고교 격차를 반영하는 면접과 심층면접을 강화할 전망”이라며 “일부 공정성 요소는 향상될 수 있지만 수험생 부담, 다양한 학생의 잠재성을 평가한다는 학종의 취지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