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사건 중 유일하게 해결된 것으로 알려졌던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복역했던 윤모(52)씨가 재심을 청구할 뜻을 밝혔다.
윤씨는 8일 충북 청주 자택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며 대기하던 취재진에 “언론을 포함해 경찰, 검찰 다 믿지 않는다. 왜 자꾸 나를 찾느냐. 직장에서 소문 나 해고되면 내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언론이 20년 전에 나를 도와줬느냐. 내가 잡혔을 때 당신들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재심 청구 여부에 대해서는 “누나와 상의해서 변호사를 선임할 것”이라며 “재심은 내가 하는 것인데, 왜 기자들이 궁금해하느냐. 생각이 정리되면 기자들을 부르겠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윤씨는 이후 언론의 과도한 취재 경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외부 접촉을 끊었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는 사생활이 침해되고 있다며 극도로 불안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씨는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에서 A양(13)의 집에 들어가 A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이듬해 10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씨는 “경찰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허위로 진술했다”고 주장했으나 2심과 3심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하지만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이춘재(56)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진술했다.
윤씨가 재심 절차를 밟을 경우 이춘재 자백에 따른 ‘새로운 증거의 발견’을 사유로 들어 원판결을 내린 수원지법에 재심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다. 사건 당시 경찰은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 대해 중금속 성분을 분석하는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을 동원, 윤씨를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 체모의 주인은 혈액형이 B형인데 범행을 자백한 이춘재의 혈액형은 O형이다. 이춘재의 자백이 재심을 위한 새로운 증거임을 인정하려면 그의 진술과 현장의 증거물이 불일치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내야 한다.
청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