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는 남성 중심 표현… 혼혈아·다문화는 배타적 용어”

입력 2019-10-09 04:02

“왜 아직도 바깥 외자가 들어있는 ‘외가(外家)’라는 표현을 쓸까요. 친가는 ‘아버지 본가’, 외가는 ‘어머니 본가’로 써보면 어떨까요?”

서울시가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중구 시민청에서 개최한 ‘2019 차별언어 학술토론회’에서 이처럼 습관화돼 굳어진 표현들을 이제라도 바꿔 쓰자는 주장이 쏟아졌다. 한국 사회의 언어가 남성,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산층, 서구 중심으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80여명의 시민들은 여성과 노인, 외국인 등 특정 집단을 겨냥하거나 나이, 상하관계에 따라 차별·혐오하는 표현들을 지양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대표적인 차별 언어로는 가족 내 권력 관계를 재생산하는 호칭이 꼽혔다. 책 ‘코끼리 가면’을 쓴 노유다 작가는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형제를 ‘도련님’ ‘아가씨’라고 높여 불러야 하고, 같은 부부도 ‘안사람’ ‘바깥양반’으로 달리 지칭된다”며 “여남 위계를 재생산하고 평등 관계를 저해하는 표현들”이라고 지적했다.

‘개저씨(개+아저씨)’ ‘맘충(어머니+벌레)’ 같은 혐오 표현은 일상생활에서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다. 여성학자인 정희진씨는 “공공 영역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막말이 표현의 자유라는 이유로 쉽게 허용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연주 서울시 젠더자문관은 “혐오적 표현이 빠르게 퍼지는 것에 반해 성평등 언어는 좀처럼 정착되지 않고 있다”며 “차별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업상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호칭 문제도 지적됐다. 식당 종업원 등 서비스 종사자들을 부를 때 ‘어이’ ‘이봐’라고 하거나 ‘아저씨’ ‘아주머니’로 낮춰 부르는 경우가 있다. 정성현 세종국어문화원 연구위원은 “‘갑’들은 이런 표현이 차별적이라고 느끼지 못한다”며 “‘직원님’ ‘담당님’ 등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외국인을 차별하는 표현도 은연중에 쓰이고 있다. 정씨는 “기지촌에서 여성운동을 하다 만난 혼혈인들은 영어로 ‘하프 퍼슨’(Half-Person·반반 섞였다는 의미), 한국어로 ‘혼혈아’로 불린다”며 “완전한 인간이 아니거나 아동으로만 취급당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시아 등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을 표현하는 ‘다문화’도 배타적 용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신지영 고려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니거나 한민족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외국인 취급을 받으며 종종 배척당한다”고 했다.

박진영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은 “포용적인 사회문화를 위해 차별적 용어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바른 공공언어로 바꿔 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한글날 당일인 9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시민들이 직접 경험한 포용과 배척의 언어를 발표·공유하는 ‘다다다(말하다·듣다·즐기다) 발표대회’를 연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