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산소 이용’ 메커니즘 발견… 암 새로운 치료 길 열어

입력 2019-10-07 23:40 수정 2019-10-14 19:12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영예는 ‘세포의 산소 이용’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이와 관련된 빈혈, 암 등 여러 질병의 새로운 치료 길을 연 미국과 영국의 의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의학연구소 노벨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윌리엄 케일린(62) 미국 하버드의대 교수, 그레그 서멘자(63) 존스홉킨스의대 종신교수와 피터 랫클리프(65)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를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산소는 세포 내에서 영양소를 에너지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세포가 체내 산소 농도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는 인류가 풀지 못한 오랜 숙제였다.

예를 들어 고산지대에 있거나 빈혈 등 질환으로 저산소 상황에 처한 경우 전신적 또는 국소적으로 ‘저산소증(hypoxia)’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 세포들이 어떤 식으로 저산소 상황에 대처하는가는 알지 못했다.

세 사람은 이런 체내 산소 수준의 변화에 세포가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규명한 공을 인정받았다.

서멘자 교수는 세포가 저산소증에 적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HIF-1α’ 단백질을 처음 발견했다. 케일린과 랫클리프 교수는 이 단백질의 작동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HIF-1a 단백질은 암을 비롯해 빈혈이나 감염, 상처치료, 심근경색, 뇌졸중 등과 연관돼 있어 이들 질환의 치료제 개발에 단초를 제공했다.

특히 암 치료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종양(암덩어리)은 점점 커지면서 산소가 부족해지는데, 이들의 연구는 저산소 상태에서 암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규명했다. 암세포는 저산소 상태에서도 자라는데, HIF-1α 단백질이 암 성장을 부추기는 ‘혈관생성촉진인자’(VEGF) 발현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는 “세포는 산소가 없는 상태가 되면 치료에 저항성을 갖게 돼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다”면서 “이들 연구는 항암제가 왜 안 듣는지, 어떻게 치료 효과를 향상할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의대 생화학교실 윤홍덕 교수는 “세 사람의 연구는 5~6년 전부터 노벨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생명과학 분야 노벨상으로 평가받는 래스커상을 2016년에 받은 바 있다.

3명의 수상자는 상금으로 주어지는 900만 스웨덴 크로네(약 10억9000만원)를 똑같이 나눠 갖는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8일 물리학상, 9일 화학상, 10일 문학상, 11일 평화상, 14일 경제학상 순으로 발표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