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급한 트럼프 최대 압박… ‘더 많이 가져오라’ 메시지

입력 2019-10-08 04:03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미국과 비핵화 실무협상을 한 뒤 귀국길에 오른 북측 대표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7일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대사는 “이번 회담은 욕스럽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연합뉴스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이후 북한의 반발이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미국을 최대한 압박해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안전보장 및 제재 완화 카드를 확실히 받아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협상 대표로 스웨덴 실무협상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는 7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번 회담은 욕스럽다”며 미국을 재차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추후 회담은 미국에 달려 있다”며 “미국이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그 어떤 끔찍한 사변이 차려질 수 있는지 누가 알겠느냐, 두고 보자”고 말했다.

김 대사는 미 국무부가 실무협상 직후 언급한 ‘2주 내 회담 재개 제안’에 대해서도 “무슨 말이냐, 미국이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 이후 100일 가까이 아무런 셈법을 만들지 못했는데 2주 안에 만들어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회의적 시각을 거듭 내비쳤다. 그는 전날 스톡홀름 현지에서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재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북한이 이처럼 벼랑끝 전술을 이어가는 것은 미국 내 정치 상황으로 위기에 처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최대한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탄핵 공세 속에 재선 레이스를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 성과’가 절실하다는 점을 적극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상대가 핀치에 몰릴수록 더 압박한다”며 “스톡홀름 협상을 깨면서도 추후 협상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은 더 많은 것을 가져오라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이 회담장에 나오기 직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했는데, 이는 배수진을 친 것”이라고 진단했다.

더 이상 미국 내 정치 상황에 이용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겪은 ‘노딜’의 수모가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트럼프 대통령의 집사) 청문회’로 수세에 몰렸던 상황과 연관돼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6일 담화문에서 “미국이 저들의 국내 정치 일정에 조미(북·미) 대화를 도용해보려는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려 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상황 관리만 하며 협상을 장기전으로 끌어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압박에도 미국이 내줄 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번 협상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했다.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채택한 대북 제재와 한·미 연합 군사훈련 등 적대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선 비핵화 로드맵을 포함한 ‘선(先) 포괄적 합의’라는 원칙을 포기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과의 ‘배드딜(나쁜 합의)’이 오히려 국내외적 역풍을 부를 수 있어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제안을 내놓아야 협상이 재개되는 국면이어서 협상 재개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양측이 다시 만나려면 명분이 필요한데, 미국이 북한에 명분을 주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최승욱 이상헌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