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가 격화되면서 주말마다 도시 기능이 마비되자 시민들 사이에서 생필품 사재기 바람이 불고 있다. 시위 도중 곳곳에서 지하철역과 은행, 상점 등이 파손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시위대가 홍콩 주둔 중국 인민해방군과 대치하는 모습까지 연출되자 무력 개입 명분을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주말 시위로 곳곳의 지하철역이 폐쇄되고 주요 쇼핑몰과 슈퍼마켓, 상점들이 문을 닫자 불안한 시민들이 사재기에 나서면서 전날 주요 대형 마트 매장의 생필품 코너가 텅 비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포스트(SCMP)가 7일 보도했다. 주요 마트마다 오전부터 시민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고, 계산하는 데 45분이나 기다렸다는 불평도 나왔다. 그나마 늦게 도착한 시민들은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몽콕에 사는 주부 마모씨는 “점심시간에 근처 마트에 갔는데 이미 곳곳의 코너가 텅 비어 있었다”며 “이런 전쟁 같은 분위기는 생전 처음 본다”고 말했다. 완차이의 마트에 들어가려다 거부당한 한 여성은 “30분 동안 이 지역을 돌아다녔는데 문을 연 마트를 찾을 수가 없다”며 “시위대가 홍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일부 시민은 쌀과 화장지까지 사재기를 했다. 췬완 지역에 사는 70대 청모씨는 “언제 마트가 문을 닫을지 몰라 불안해 물건을 사러 나왔다”며 5㎏짜리 쌀 세 포대와 냉동만두, 통조림 등을 잔뜩 사갔다.
시위대가 중국계 은행 점포를 공격해 현금자동입출금기(ATM)까지 파괴하는 바람에 정상 운영 중인 ATM마다 현금을 찾으려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홍콩 금융 당국은 주말 시위대의 기물 파손으로 시내 전역의 ATM 3300대 중 10%가 작동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대형 태풍이 와도 문을 열던 홍콩 최대 편의점 체인인 세븐일레븐은 6일 홍콩 전역에서 영업을 중단했다. 지난 5일에는 홍콩 전역의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다. 홍콩지하철공사(MTR) 4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경찰은 복면금지법을 위반한 시위대를 잇따라 체포하며 강경 대응하고 있다. 경찰은 복면금지법 위반 혐의로 최소 13명을 체포했다. 온라인에는 10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경찰에 체포되고, 여성 시위자가 경찰에 뺨을 맞는 사진과 동영상이 유포돼 시위대의 분노를 불렀다. 경찰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불법 집회에 참여한 혐의로 18세 대학생과 38세 여성을 기소했다. 복면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첫 사례다.
일부 시위대는 6일 시위에서 홍콩에 주둔 중인 중국군과 대치하는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수백명의 시위대가 중국군 막사 벽에 레이저 불빛을 비추자 중국군 병사가 지붕 위로 올라가 중국어와 영어로 “여러분은 법을 위반하고 있으며 기소될 수 있다”고 적힌 경고문을 들어보였다. 중국군은 이어 광둥어로 “이후 발생하는 결과는 모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경고했고, 노란색의 ‘경고’ 깃발을 들기도 했다.
로이터는 홍콩 시위대와 인민해방군 사이의 첫 직접 접촉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홍콩 야당에서는 “총을 닦으려다 총에 맞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야당 의원 투진선은 “시위대의 행동은 너무나 위험했다. 중무장한 인민해방군과 충돌할 경우 어떤 대응을 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친중파 진영에서는 “시위대의 행동이 인민해방군의 도발을 이끌어내려는 ‘함정’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