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만에 최저 실업률을 기록한 미국의 지난달 고용지표를 두고 ‘경기 둔화의 전조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용 증가율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한 데다 소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임금 상승률이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하는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3년 만에 최저 수준을 보이면서 ‘R(경기 침체·recession)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선 오는 29~30일(현지시간)에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확신한다. 디플레이션(장기 물가 하락) ‘경고등’이 켜진 한국은행 입장에선 기준금리를 내릴 명분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미국 10년물 채권 금리(수익률)는 지난 4일 1.514%에 마감했다. 지난달 14일 고점(1.901%)을 찍고 하락세다. 통상 국채 금리는 기준금리를 따라간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국채 금리에 반영된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내년 미국의 경기 후퇴가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추가 기준금리 인하로 10년물 국채 금리가 1% 초반까지 떨어질 것이고, 글로벌 금리 인하 경쟁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관측했다.
시장은 미국의 경기 둔화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달 제조업 PMI에 이은 서비스업 PMI의 큰 낙폭이 시장에 위기감을 조성했다. PMI는 매월 가장 먼저 산출되는 경기 지표다. 향후 한 달간 경기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여겨진다.
50년 만의 최저 실업률(3.5%)만으로는 지난달 고용지표를 좋게 볼 수 없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고용 증가율과 임금 상승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다. ING그룹은 지난 3일 “지난달 비농업 취업자 수는 전월 대비 13만6000명 증가했는데 이는 시장 예상치(14만5000명)에 미치지 못했다. 시간당 임금 상승률도 1년 전보다 2.9% 오르는 데 그쳐 시장 기대치(3.2%)를 밑돌면서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이 임금 상승률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소비’가 자리 잡고 있다. 보호무역 기조에도 미국 경제는 ‘소비’에 힘입어 내수 시장을 키워 왔다.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는 2000년 이후 최고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만큼 소비가 활발하다. 하지만 임금이 감소해 가계의 실질구매력에 문제가 생기면 경기는 곧장 얼어붙을 수 있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관세가 누적돼 중국산 수입품 가격이 치솟는 점도 가계 소비에 악재로 다가온다.
이에 따라 시장은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오는 30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낮출 가능성을 높게 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7일 현재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81.8%에 이른다.
한국도 기준금리 인하 압력이 덩달아 높아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16일 열린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0.25~0.50% 포인트로 좁혀진 상태다. 최근 두 달 연속으로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 상승률’을 보여 금리 조정이 시급하다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한은은 지난 8월 30일 기준금리를 동결했었다.
ING는 “한은이 올해 남은 2번의 통화 회의에서 모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하면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1240원 선으로 오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