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여성 교육에 헌신한 김필례(1891~1983·사진) 선생의 기념문집이 발간됐다. 선생은 한국YWCA를 창설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와 정신여학교 수피아여학교를 이끌었으며 서울여자대학교를 설립했다.
김필례선생기념사업회는 7일 서울 종로구 서울YWCA 대강당에서 ‘김필례 그를 읽고 기억하다’란 제목의 기념문집출판 감사예배를 드렸다. 책은 열화당에서 출간했으며 총 672쪽 분량이다. 선생을 다룬 평전과 생전 기고문 및 추모글에 이어 1935년 선생이 저술한 ‘성교육(조선예수교서회)’ 영인본까지 모아서 제작했다.
이송죽 기념사업회 편집위원장은 “선생은 ‘배운 만큼 달라야 하고, 믿는 만큼 달라야 한다’는 말을 평생 신조로 삼았다”면서 “한국 최초 여성 국비 유학생으로서 여성의 교육, 조국의 독립, 더 나은 사회 건설을 위해 헌신했다”고 밝혔다.
선생은 1891년 황해도 장연 소래마을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최초의 자생적 장로교인 소래교회에 다녔다. 선교사들이 이끌던 서울 연동여학교(정신여학교의 전신)로 진학한 선생은 1908년 여성 최초로 관에서 유학비를 지원받아 일본 도쿄여자학원에 입학했다. 유학 후 정신여학교 교사가 된 선생은 18년 세브란스 출신 의사인 최영욱 박사와 결혼했다. 19년 2월엔 조카인 김마리아 선생이 도쿄에서 기모노 허리띠에 숨겨 가져온 2·8 독립선언서를 국내에 배포하는 일에 함께했다.
20년대 미국 아그네스스콧대와 컬럼비아대 대학원에 유학한 선생은 남편의 연고지인 광주로 돌아와 수피아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38년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해 학교가 폐교되자 선생은 45년 해방될 때까지 여전도회 야학 농사일 교회일로 봉사하며 지냈다.
50년 4월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직에 오른 선생은 그해 6월초 세계연합장로회 여전도회 4차 대회 참석차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6·25 전쟁이 발발해 1년 가까이 귀국하지 못했다. 그사이 남편 최 박사가 공산군에 의해 총살되는 아픔을 겪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