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성자의 귀한 몸’ 216장(통 356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여호수아 17장 14~18절
말씀 : 특권의식은 사회 정치 경제적으로 특별한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권리, 명성을 가진 이들이 종종 자신들의 책임과 의무는 등한시한 채 권리는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특별한 대접과 요구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은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사회 지도층에게는 거기에 걸맞게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요구됩니다. 그러나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사회 지도층은 오히려 시민들의 비판과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상이 걱정해야 할 정도로 그 이미지와 권위가 추락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가진 책임과 의무는 등한시한 채 자신의 특별한 권리만을 주장한 결과가 아닐까요.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전쟁을 치른 후에 정복한 땅을 분배합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지파들이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이때 요셉 자손인 에브라임과 서쪽 므낫세 지파도 땅을 분배받았는데, 곧이어 여호수아에게 불만을 쏟아 냈습니다. 자기들은 두 지파인데도 왜 제비뽑기를 한 번밖에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라고 합니다.
이들이 불만을 제기한 이유는 여호수아 역시 에브라임 지파이기 때문입니다. 너도 우리와 같은 지파인데 왜 이렇게 결정했느냐는 원망입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그들의 불만에 따끔하게 질책하며 오히려 “너희들이 스스로 산지를 개척하라”(15절)고 권면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유다 지파 다음으로 넓은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이스라엘을 살린 요셉의 특별한 후손인데 이 정도 대접으로는 부족하다는 특권의식이 있었습니다.
신앙의 특권의식은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위태롭게 만듭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도 여기서 비롯됩니다. “내가 목사인데, 내가 장로인데, 내가 이 교회를 어떻게 세웠는데, 잠도 안 자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알아? 내가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우리 부모님이 이 교회를 세웠는데, 나를 이렇게 대접해?” 이 기독교 특권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오늘날 교회는 다시 회복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이른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 때문입니다. 은혜를 잊는 백성은 이처럼 오만방자해집니다.
스스로 개척하라는 여호수아의 따끔한 질책을 받은 후 이들은 정복해야 할 그 땅의 족속들이 ‘철 병거’를 가졌다는 핑계를 대며 불가(不可)하다는 변명만 합니다. 자신들의 신앙 내력을 내세울 때는 특권을 주장하지만 자신들이 져야 할 책임과 의무 앞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이는 올바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책임 있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 : 존귀하신 주님,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고 낮은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신 그 은혜와 사랑에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마땅히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를 피하지 않게 하시고 기쁨으로 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조춘성 목사(공주 상서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