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7개월 만에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양측은 주말 사이 협상에서 비핵화 방식과 안전보장 및 제재 완화 방안을 모색했으나 접점 마련에 실패했다. 북한이 더 많은 대가를 얻어내기 위해 ‘계산된 결렬’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전형적인 ‘벼랑끝 전술’이라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협상 재개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완전한 철회를 거듭 요구하면서 향후 양측 협상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6일 밤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이 우리 안전을 위협하고 인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이번과 같은 역스러운(역겨운) 협상을 할 의욕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이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북·미) 사이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북한은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실무협상 결렬 직후 그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북측 협상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주스웨덴 북한대사관 앞에서 성명을 통해 “협상 결렬은 전적으로 미국이 구태의연한 태도를 버리지 못한 데 있다”며 “미국이 빈손으로 협상에 나온 것은 결국 문제를 풀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김 대사는 “매우 불쾌하다”고도 했다.
미국의 반응은 확연하게 달랐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김 대사의 성명 발표 3시간 만에 낸 성명에서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협상장에 가져갔고, 좋은 토론을 했다”며 “북한의 성명은 8시간30분 동안 진행된 논의의 정신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외무성 담화에서 “미국은 우리 대표단의 기자회견이 협상의 정신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였다느니, 훌륭한 토의를 가졌다느니 하면서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저들의 국내 정치일정에 조미 대화를 도용해보려는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김 대사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실무협상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방안, 북·미 관계 개선 등에 대한 입장을 제시했으나 간극이 컸다고 한다. 특히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에 따른 단계적 보상을 요구했으나 미국 측으로부터 ‘빈손’ 수준의 답변만 받자 발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아울러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군 유해 송환 등 지난해 6월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취한 ‘선의의 조치’에 대해 미국이 행동으로 답해야 할 차례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최종적인 비핵화 상태를 포함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에 우선 합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큰 그림이 완성돼야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다만 양측은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열어놨다. 미국은 스웨덴 정부의 2주 후 협상 재개 제안을 수용했다고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김 대사도 협상 전면 중단 대신 미국에 연말까지 새 방안을 숙고할 것을 권고했다.
최승욱 손재호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