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금지법이 기름부은 홍콩 시위… 중국계 은행·점포 공격

입력 2019-10-07 04:04
여러명의 시위대가 ‘복면금지법’을 비판하기 위해 6일 전체주의 정부 비판의 의미를 담은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뒷머리에 착용한 채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홍콩 당국은 이날 복면금지법을 어긴 시위대 13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홍콩 정부가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한 ‘복면금지법’이 시민들을 자극하며 사흘째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홍콩 경찰이 강경 일변도로 나가자 시위대는 곳곳의 지하철역과 중국계 은행, 친중국 상점들을 파괴했다. 중국인 은행원이 시위대에 폭행당하면서 중국 네티즌들은 거세게 시위대를 비난했다. 홍콩 사태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시민들은 6일 시내 곳곳에서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과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이 오후 2시쯤부터 행진하면서 시내 중심 도로 곳곳은 폭우 속에 우산을 쓴 시위대 물결로 가득차 교통이 마비됐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모두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 등 다양한 마스크와 가면을 쓴 채 “홍콩이여 저항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는 친중국 업체가 운영하는 스타벅스의 대형 유리창을 파손했고 카오룽 정부 사무실 벽과 문, 유리창 등도 부쉈다. 중국 건설은행 점포도 시위대의 공격으로 현금인출기와 유리창 등이 파손됐다. 몽콕 전철역 출입구에선 불길과 연기가 치솟았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해산에 나섰으나 시위대는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저항했다.

전날에도 시위대는 중국 광둥성 선전과 인접한 북부 신계 지역의 셩수이에서 중국 이동통신사 차이나모바일과 베스트마트360 등 친중국 상점들을 파괴했다. 시위대 일부는 홍콩 자치정부 통치행위를 일절 부정하고 자체 임시정부 수립 계획을 담은 ‘홍콩 임시정부 선언’을 공표하기도 했다. 앞서 홍콩 지하철 당국은 지난 4일 오후 10시쯤 안전을 이유로 모든 지하철 운행을 중단시켰으며, 6일에도 절반 이상의 지하철역이 폐쇄됐다.

한 경찰이 시위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경찰봉으로 위협하는 듯한 몸짓으로 해당 지역에서 나가라고 말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홍콩 경찰은 시위 도중 허벅지에 총상을 입은 14세 소년을 폭동 혐의로 기소하는 등 시위대에 대한 강경대응 기조를 이어갔다. 이 소년은 지난 4일 오후 9시쯤 위안랑 지역에서 경찰이 쏜 총에 왼쪽 허벅지를 맞아 병원에서 탄환 제거 수술을 받았다.

경찰은 당시 상황에 대해 “경찰관이 생명에 위협을 느껴 한 발을 발사했으며, 이후 화염병 2개가 날아들어 경찰관의 몸에 불이 붙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 경찰의 실탄에 가슴을 맞은 18세 고교생도 폭동 혐의로 기소됐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복면금지법 시행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시민들에게 폭도들과 관계를 끊으라고 촉구했다. 람 장관은 5일 공개한 동영상에서 “어제 홍콩은 폭도들의 극단 행동 때문에 ‘매우 어두운 밤’을 보냈다”며 “홍콩은 오늘 절반이 마비상태에 빠졌고, 시민들은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이어 “홍콩 정부는 단호히 폭력을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인 은행원이 시위대에게 폭행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중국 본토의 여론도 들끓고 있다. 한 중국인 남성이 지난 4일 JP모건 본점 건물에 들어서려 하자 시위대가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야유를 보냈다. 그가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라고 말하자 시위대 중 한 명이 그를 폭행해 쓰고 있던 안경까지 날아갔다. 중국 네티즌들은 “시위대가 아니라 폭도”라거나 “인민군을 투입해 진압해야 한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