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 1급 시설인 화력·수력발전소에 일반 아파트 수준의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하려는 게 확인됐다. 일반 건물의 내진설계 기준대로면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발전설비 자체가 가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전력 공급이 끊어질 수 있다. 이와 달리 별도의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한 원자력발전소는 지진 발생 후에도 안전하게 시설을 재가동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정부가 내진설계 기준을 새롭게 적용하지 않는 배경에는 예산 절감을 원하는 인식이 자리한다. 산업부는 내진설계 보강 대신 예산을 아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행정적 계산과 안전을 맞바꿨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6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산업부는 화력·수력발전소에 기존과 마찬가지로 건축법상의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다. 대한전기협회에 의뢰해 이런 내용을 담은 ‘전기설비 기술 기준’ 및 ‘송변전설비 내진설계 지침’ 제·개정안 초안을 만들어둔 상태다. 건축법의 ‘건축구조 기준’은 지진 발생 시 인명·재산 피해를 방지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때문에 건물을 지을 때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설계하면 된다.
주거나 상업용 건물이라면 이 기준을 적용하는 게 맞는다. 다만 발전소는 사정이 다르다. 비상 상황에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감사원이 2015년 3월 화력발전소의 내진설계 기준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2016년 9월 발생한 경주 지진(규모 5.8), 2017년 11월 일어난 포항 지진(규모 5.4)은 내진설계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기도 했다.
산업부의 선택은 다른 발전시설과 대비되기도 한다. 원자력발전소는 규모 6.5~7.0 강진에도 시설을 가동할 수 있도록 별도의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내진설계를 한층 강화했다. 화재 위험이 높은 액화석유가스(LPG) 관련 시설도 지난해 6월부터 별도의 내진설계 기준을 적용 중이다. 석유를 수송하는 송유관은 오는 12월부터 새 기준을 적용한다. 일반 건축물과는 다른 송유관의 특성을 고려한 내용이 담겼다.
유독 화력·수력발전소에만 일반 건축물 기준을 적용하는 이면에는 ‘예산’이라는 암초가 숨어 있다. 대한전기협회가 지난해 11월 진행한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새로운 내진설계 기준을 도입하면 현재 운영 중인 70개 수력발전소 설비 중 37개를 보강해야 한다. 화력발전소까지 더하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난다. 반면 기존 건축법을 적용하면 3개만 보강하면 된다. 대한전기협회는 “전체적인 사업비 부담을 경감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석을 달았다.
이는 지진 발생 시에도 국가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목표와 상충된다. 우 의원은 “국가 전력망을 책임지는 산업부의 무책임한 업무 처리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한시라도 빨리 발전소의 특성을 고려한 독자적 내진설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