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관리물가’ 품목이 46개로 늘어났다. 2017년까지 소비자물가 품목의 7~8% 수준을 차지했던 관리물가 품목은 현 정부 들어 10%로 증가했다. 새로 편입된 품목은 조제약, 학생복, 치과보철료, 교과서 등 주로 민간 영역이다. 민간이 결정하는 가격을 정부가 지원해 인상을 막은 것이다. 정부는 마이너스 상승률까지 보이는 ‘저물가 현상’에 이런 공급 측 가격 억제인 ‘관리물가 영향’이 있다고 분석한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6일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기준으로 관리물가 품목은 46개에 이른다. 전체 소비자물가 조사 품목 460개 중 10%다. 관리물가 품목은 2010~2014년 34개로 전체(481개)의 7.1%에 그쳤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41개로 전체(460개)의 8.9%로 소폭 늘었었다.
관리물가 품목에 대한 공식적 기준은 없다. 정부가 직간접으로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추정되는 품목이다. 가계비 경감을 위해 정부가 ‘가격 상승’을 억제한다고 볼 수 있다. 유형은 3가지다. 상수도료, 쓰레기봉투료, 고등학교·국공립대학교 납입금, 열차료, 전기료 등 공공부문이 직접 공급하는 품목이 그중 하나다. 정부가 필수재인 공공요금을 관리하는 것이다.
민간 영역에도 관리물가 품목이 있다. 민간이 공급하지만 정부가 보조금 등을 지원해 가격 상승을 막는 식으로 관리한다. 각종 진료비, 요양시설이용료, 병원검사료, 버스요금, 택시료, 학생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부가 재정지원 없이 가격을 관리하는 품목도 있다. 부동산중개수수료, 방송수신료, 휴대전화요금, 국제항공료 등이다.
한은에 따르면 최근 관리물가 품목은 민간 영역에서 늘었다. 전체 관리물가 품목 가운데 공공 영역 비중은 31.3%로 지난해(35.2%)보다 줄었다. 반면 정부지원을 받는 민간 영역 비중은 41.8%로 전년(36.6%)보다 증가했다. 추가된 관리물가 품목은 조제약, 병원약품, 치과보철료, 남자학생복, 여자학생복, 교과서 등이다.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 민간 영역의 품목 비중은 26.9%로 1년 전(28.2%)보다 감소했다.
정부는 최근 저물가에 ‘관리물가’ 영향이 있다고 판단한다. 정부 정책이 일부 공급 측 가격 상승을 누르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래서 ‘디플레이션(deflation·물가가 하락하고 경제 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에 선을 긋는다. 농산물 등 변동성이 큰 품목과 관리물가를 제외하면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이 1%대로 올라간다고 한다.
실제로 2015년 평균과 올해 9월 대비 품목별 물가상승률을 비교하면 관리물가 품목인 학교급식비(7.0→-57.8%), 남자학생복(-16.5→-47.5%), 여자학생복(-16.3%→-44.8%), 고등학교납입금(0.2%→-36.2%) 등의 상승률이 크게 낮아졌다.
다만 총 수요 부진에 대한 우려는 계속 될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이 1%대에서 0%대로 주저앉은 데에는 기저효과와 관리물가 영향이 크지만, 1%대에서 2%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이면에는 ‘수요 부진’이 존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추 의원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과거 일본 사례를 볼 때 수요 부진 우려를 간과할 일만은 아니다”며 “특히 정부가 직간접으로 관리하는 품목들이 근원 물가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디플레이션 우려와 같이 엉뚱한 방향에서 문제가 생긴 만큼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 면밀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