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사내이사서 물러난다… 대형 투자 위축 우려

입력 2019-10-07 04:07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물러난다. ‘책임경영’을 강조하며 2016년 10월 사내이사에 선임된 지 3년 만이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26일까지 이사회나 임시 주주총회를 열 계획이 없다.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에 재선임되기 위해서는 이사회가 선임한 뒤 주주총회에서 의결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임기를 연장하지 않는 것으로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는 형식을 취하는 셈이다.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는 가장 큰 이유는 재판에 대한 부담감 때문으로 해석된다. 지난 8월 대법원이 파기환송을 선고하면서 이 부회장은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은 25일 첫 공판이 시작된다. 이 부회장은 본인 거취 문제가 삼성전자 전체의 ‘리스크’로 확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내이사 자리를 내려놓는 것으로 보인다.

또 사내이사 자리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이 반대할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주식 9.97%를 보유해 이건희 회장과 특수관계인(21.24%)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앞서 올해 3월 주주총회 시즌에 국민연금은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건에 반대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두 사람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의 침해 우려’를 이유로 반대했다. 재판 중인 이 부회장에게도 비슷한 이유로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더라도 총수로서 삼성전자의 경영에는 정상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일본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등 불확실성이 극대화한 경영 환경에서 총수로서 이 부회장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를 맡은 건 책임경영을 하라는 여론 때문이었다”면서 “사내이사에서 물러난다고 경영활동까지 소극적으로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대법원 파기환송 선고 이후에도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1일 삼성전자 서울R&D 캠퍼스 내 삼성리서치를 방문해 차세대 기술전략 등을 논의했다. 추석 연휴 기간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삼성물산 임직원을 격려했다. 이 부회장이 비전자 계열사 해외출장을 간 것은 처음이었다. 사우디 방문 기간에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부총리를 만나 스마트시티 등에 대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지난달 20일에는 일본 재계 초청으로 럭비월드컵 참관차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대외환경과 상관없이 삼성의 ‘리더’가 이 부회장임을 재확인하는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면 대형 인수·합병(M&A) 등 투자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공지능(AI), 시스템 반도체 등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최종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이 부회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16년 자동차전장업체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5000억원)에 인수한 이후 대형 M&A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