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범죄 혐의를 받는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재벌 총수 등을 공개적으로 소환하는 관행을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국민이 관심을 갖는 대형 비리 등 사건에서 주요 인물이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의 결정이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은 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건 관계인에 대한 공개소환을 전면 폐지하고 수사 과정에서 이를 엄격히 준수할 것을 전국 검찰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검은 “사건 관계인의 인권 보장을 위해 공개소환 방식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내·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며 “앞으로 구체적인 수사공보 개선방안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우선적으로 공개소환을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개소환이 전면 폐지되면 그동안 예외적으로 공인에 허용됐던 포토라인도 의미를 잃게 된다. 과거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검찰에 소환되면서 포토라인에 섰지만 앞으로는 이런 장면을 보기 어렵게 된다. 1993년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언론사 카메라에 다친 이후 정착된 포토라인 관행이 26년 만에 사라지는 것이다.
검찰은 공개소환 전면 폐지가 소환 대상자와 일시를 미리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남부지검은 이날 대검 발표 전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의원 17명에 대해 오는 7~11일 출석을 요구했다”고 언론에 알렸는데 앞으로는 이런 공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개소환 전면 폐지 결정은 윤 총장이 특수부 축소 등 자체 개혁안을 발표한지 3일 만이고 문재인 대통령이 개혁 지시를 내린지 4일 만이다. 외부의 검찰개혁 요구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속도가 빠르고 전격적이라는 평가다.
검찰의 결정은 그러나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해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여러 이견 가운데서도 공개소환과 포토라인 관행이 유지된 것은 주요 사건에 관한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함께 검찰과 경찰의 밀실 수사를 방지하는 차원이었다. 공개소환 관행이 폐지되면 수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관한 의문이 커질 수 있다. 검찰이 이 문제를 언론 단체와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데 대해서도 비판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검 관계자는 “(주요 사건 피의자인) 본인은 이미 (신원이) 상당히 외부에 공개된다”면서 “수사를 폐쇄된 상태로 하고 깜깜이 소환하겠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검찰 결정이 전날 조국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특혜 소환’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5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열리는 대규모 검찰개혁 요구 집회를 고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곧 조 장관에 대한 직접 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현직 장관 공개 조사’ 부담을 덜기 위한 선제 대응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조 장관 소환 가능성이 대두되는 상황을 고려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 요구에 물러나지 않으면서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한다는 현재 ‘윤석열 검찰’의 스탠스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조 장관 일가 의혹에 관한 수사는 이런 조치와 별개로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허경구 안규영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