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R(경기 침체·Recession)의 공포’에 빠져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제조업발 한파에 이어 미국이 EU에 ‘관세폭탄’ 부과 계획을 밝히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대서양 무역전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한국도 경기하방 압력이 점점 거세질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일(현지시간) EU에서 수입하는 항공기에 10%, 농산물과 공산품을 포함한 다른 품목에는 25%의 관세를 오는 18일부터 부과한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대상에는 EU산 치즈, 올리브, 커피, 버터, 위스키 등이 포함된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글로벌 증시는 크게 출렁였다. 이날 일본 닛케이255지수는 전날 대비 2.01% 급락했다.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주요 증시도 일제히 1% 안팎의 하락세를 보였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증시는 연이틀 2% 넘게 하락했다. 뉴욕 증시의 주요 3대 주가지수는 이틀 새 급락했다. 다우존스지수는 이틀 동안 840포인트(3.1%)가 떨어졌다. 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올해 처음 이틀 연속 1%대 하락세를 보였다. 나스닥지수 역시 90.65포인트(1.13%)와 123.44포인트(1.56%) 하락했다.
‘R의 공포’를 야기한 주요 원인으로는 제조업발 침체가 꼽힌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제공하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0을 하회하면서 투자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PMI는 50.0보다 수치가 낮으면 향후 경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업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업보다 늘었다는 의미다.
미국의 9월 PMI는 47.8로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ING그룹 측은 “미 달러화(USD) 강세가 여전히 지속되고 글로벌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현 상황에서 미국 경기가 가까운 시일 내에 반등할 것 같진 않다”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적어도 올해 12월까지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를 인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들의 PMI도 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특히 독일은 10년 만에 가장 낮았다. 중국과 일본 경제도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6%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일본의 대형 제조업 체감경기 지표는 6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게다가 일본은 지난 1일부터 소비세 인상까지 겹치면서 경기침체가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도 마땅한 ‘출구’가 없다. S&P는 지난 1일 석 달 만에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8%로 재조정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출 성장세가 둔화돼 전망이 어둡다고 언급했다. 이밖에 다른 주요기관들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초 대비 2% 초·중반에서 1% 후반까지 자꾸 낮추는 분위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증시 하락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내 증시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이는 기업들의 각종 비용 부담을 증가시켜 추가적인 경기 하강 압력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