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철학 품은 자동차, 매력을 더한다

입력 2019-10-06 21:56
현재의 모습보다 오랜 시간 쌓인 이야기가 그 사람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때가 있다. 물건도 그런 경우가 있다. 많은 것들이 유행에 따라 점점 더 빠르게 변하지만 변치 않는 철학과 전통이 물건의 값어치를 높여주기도 한다. 이 부분을 내세운 마케팅을 ‘헤리티지 마케팅’이라고 한다. 자동차업계에서도 헤리티지 마케팅을 볼 수 있다.

마세라티 마니아였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콰트로포르테’ 3세대 모델을 타고 있는 모습. 마세라티 제공

대표적인 ‘슈퍼카’ 마세라티의 마니아층은 브랜드의 105년 역사를 중시한다. 존재감을 강조하는 배기음과 강인함을 상징하는 삼지창 엠블럼은 마세라티의 ‘레이싱 혈통’을 드러낸다. 마세라티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고객들을 대상으로도 SNS 등에서 마세라티의 역사와 철학을 알리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1914년 자동차와 레이싱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마세라티가(家)의 여섯 형제들에 의해 설립되면서 마세라티는 세계 자동차 산업과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레이싱 드라이버이자 기술자로 이름을 알렸던 넷째 알피에리를 주축으로 이탈리아 볼로냐에 문을 연 작은 사무실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는 현 마세라티의 전신이다.

알피에리는 직접 드라이버로 경기에 참가했던 1926년 마세라티가 처음 생산한 ‘티포 26’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929년엔 16기통 초대형 엔진을 장착한 ‘V4’를 이탈리안 그랑프리에서 처음 선보이며 최고속도 246.069㎞/h의 세계기록을 수립했다.

마세라티의 팬들이 열광하는 고유의 배기음은 20세기 최고의 테너로 불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도 인연이 깊다. 마세라티는 1984년 본사를 파바로티의 고향인 모데나로 옮겼는데, 파바로티는 직접 본사를 방문해 배기음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탈리아인들은 마세라티의 배기음과 파바로티의 음악적 성향이 매우 닮았다고 평가한다.

한불모터스가 제주도에 개관한 ‘푸조 시트로엥 자동차 박물관’ 내부. 한불모터스 제공

푸조와 시트로엥은 고향 프랑스를 넘어 국내에 적극적인 헤리티지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공식 수입원 한불모터스는 제주도 서귀포시에 ‘푸조 시트로엥 자동차 박물관’을 열었다. 박물관은 푸조의 200년과 시트로엥의 100년 역사, 헤리티지, 그리고 브랜드가 전하는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박물관 1층엔 시트로엥의 클래식카와 역사를 온·오프라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인 ‘시트로엥 오리진스’와 다양한 오리지널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 ‘헤리티지 스토어’가 마련됐다. 시트로엥 오리진스에는 1934년 생산된 ‘트락숑 아방’을 비롯해 브랜드의 기념비적 모델이 전시돼 있다.

2층은 푸조의 과거부터 현재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콘셉트로 ‘타입 139 A 토르피도’(1911년), ‘201C 세단’(1930년), ‘401D 리무진’(1935년) 등 기념비적인 차량들을 전시했다.

현대자동차가 전주 한옥마을에 연 ‘현대극장’. 현대자동차 제공

해외의 유명 자동차 브랜드에 비해 우리나라 자동차 브랜드는 역사가 짧다. 그렇다고 해서 헤리티지 마케팅이 불가능한 건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전주 한옥마을에 1980년대 말 영화관 콘셉트의 팝업 스토어 ‘현대극장’을 열었다. 현대차만의 브랜드 헤리티지를 담은 것이다.

클래식카 전시와 함께 다양한 볼거리와 이색 체험 콘텐츠도 마련됐다. 40~50대 고객에겐 향수를, 20~30대 고객에겐 색다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한다. 야외에 조성된 80년대 풍의 택시 승강장엔 국내 최초의 독자 모델 ‘포니’가 전시됐다. 국내 최장수 자동차 브랜드인 ‘쏘나타’의 1세대, 2세대 모델과 올해 출시한 신형 쏘나타(8세대)를 함께 전시해 국내 대표 중형 세단의 과거와 현재를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현대극장은 오는 13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6일 “현대극장은 현대차의 브랜드 헤리티지를 모든 세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