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견된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멧돼지에서 ASF 바이러스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리무중이었던 ASF의 발생경로와 관련, ‘멧돼지 전파’ 가능성이 제기될 전망이다.
환경부는 3일 남방한계선 북쪽 약 1.4㎞ 떨어진 경기도 연천군에서 ASF에 감염된 야생멧돼지 폐사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중국에서 ASF가 발병한 지난해 8월 이후 야생멧돼지에 대한 바이러스 검사를 하고 있다. 올해 접경 지역에서 총 261건을 조사했으며, ASF 바이러스가 검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가 검출되면서 ‘전파 경로’ 가능성도 거론된다. 지난달 17일 국내에서 처음 발병한 ASF는 ‘사육돼지’를 중심으로 확진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감염 경로는 오리무중이다. 북한 유입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멧돼지 폐사체가 전염 경로 파악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동시에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높은 야생멧돼지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7월 말까지 경기도·강원도에서 ASF와 유사한 돼지열병(CSF)으로 죽은 멧돼지 폐사체 수는 1만4320마리로 추정된다.
하지만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8월까지 해당 지역에서 발견한 멧돼지 폐사체 수는 34마리에 불과했다. 전체의 약 0.2%다. 멧돼지의 ASF 감염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사육돼지보다 야생멧돼지에서 ASF 발병이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
김현권 의원은 “유럽에서 2년 만에 ASF 발병을 종식해 방역의 모범 사례로 주목을 끌고 있는 체코에서는 야생멧돼지 사체가 ASF 전파의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판단했다”며 “지난해 3월 감염 지역 사냥터 사용자들에게 야생멧돼지 사체를 집중 탐색하라고 지시했고, 이때 발견된 사체 56건 가운데 10건이 ASF 양성으로 확인되는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정부의 멧돼지 관리가 부실한 배경에는 예산과 인력 부족이 있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은 ASF, CSF, 조류독감(AI), 구제역 등 야생멧돼지와 야생철새 질병관리 업무를 전담한다. 연구팀의 인원 구성은 연구관과 연구사 등 정규직 7명과 비정규직 9명이 전부다. 그나마 수의직은 원래 3명이었으나 현재 1명은 환경부에 파견됐고, 또 다른 1명은 휴직 상태다. 전국의 야생동물 질병관리를 맡고 있는 관련 부서의 수의사가 단 1명뿐이라는 얘기다.
야생동물 질병관리 전담 기관 설립도 차질을 빚고 있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10월 광주광역시에 청사를 준공했다. 수의사를 비롯한 정규직 100~150명이 일하는 곳이다. 하지만 인력이나 예산에 대한 관련 부처 협의가 아직까지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김 의원은 “ASF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인력과 예산을 충분하게 투입해야 한다”면서 “아울러 실효성 높은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