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21)는 서울에 있는 한 유학원을 통해 지난달 중국 항저우에 있는 저장대에 입학했다. 이 유학원은 중국 명문대 졸업생들이 맞춤 입시 컨설팅을 제공한다고 홍보해온 곳이다. A씨는 자기소개서 작성 등 입시 준비부터 비자 수속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해준다는 유학원 설명에 약 130만원을 내고 등록했다.
그런데 처음 설명과 달리 유학원의 입시 지원은 허술했다. A씨는 국제정치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지만 유학원은 엉뚱하게 신문방송학과에 입학 원서를 냈다. A씨는 합격 후 입학 수속 과정에서 소속 학과가 신방과로 돼 있는 사실을 알고 행정 절차를 거쳐 겨우 학과를 변경해야 했다. 합격 전에도 A씨가 자기소개서 첨삭 등을 요청하면 유학원 담당자는 “시간이 없다”고 차일피일 미뤘다. A씨는 입시를 도와준 담당자 가운데 저장대 졸업생이 아닌 자퇴생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았다.
A씨와 이 대학 한국인유학생회장 등은 2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유학원 커뮤니티에 항의 글을 여러 번 올려서야 공론화가 시작됐다”며 “나중에는 중국 현지 직원이라는 사람이 ‘자꾸 문제를 크게 만들면 보복하겠다’고 하더라”며 억울해 했다. A씨와 비슷한 피해를 본 학생들은 이 학교에만 6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은 해당 유학원을 상대로 환불을 요구하는 법적 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다.
현행법상 유학원은 별다른 자격 요건 없이 사업자등록증(해외유학업)만 내면 누구나 운영할 수 있다. 유학원의 업무 영역이 외국학교 입학을 넘어 어학연수, 단기연수, 비자 및 여권 발급 대행 등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관련 규정이 없어 피해를 당해도 보상받기가 어렵다.
일부 유학원들은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10~11월 대대적으로 ‘수능 없이 해외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광고를 내 수강생을 끌어모으고 있다. 유학원장이 여름방학 기간 초·중·고교 단기 어학연수생을 모집한 뒤 현지 어학원에 등록하지 않고 수강료만 챙겨 달아나는 사기 사건도 종종 벌어지고 있다. 다른 유학원 관계자는 “유학원 중에는 외국 대학과 관련된 일이라며 결제 기록이 남는 카드 거래를 거부하거나 할인 혜택을 주겠다며 아예 계약서 없이 진행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유학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폐기됐다. 이 법안은 유학원 설립·운영자의 계약서 작성 및 교부 의무를 명시하고 사전 신고한 대행료보다 더 많이 받을 경우 그 사유를 의뢰인에게 알리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20대 국회에선 관련 논의는 없는 상태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유학원 분쟁 관련 상담은 매년 60건을 넘는다. 올들어 지난 8월까지는 34건이 접수됐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피해 사실이 분명해 체계적인 상담이 이뤄진 건수만 추린 것”이라며 “실제 상담 건수는 훨씬 많다”고 말했다.
김기동 한국유학협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 유학원 약관이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잘 모르고 사업자등록증을 유학업 자격증처럼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며 “유학원 말만 듣고 외국에 갔다가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 계약 사항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